2026. 7. 31. 11:00ㆍ따뜻한 토론교육 여름호(제9호)/교실 이야기
3학년 연표 만들기 수업 확장: “행복한 기억을 내 엄지에 저~장!”
서울토론모임 박미선
사회 시간, 나에게 있었던 중요한 일을 떠올려 보고 일이 일어난 순서대로 기록해보는 시간이었다. 기억만 떠올리는 단순한 수업이 아닌 좀 더 의미 있는 수업을 고민하다, ‘앵커링’이 떠올랐다. 우리 마음속에는 특정 행동을 할 때 특정한 감정이 바로 튀어나오게 하는 ‘감정 스위치’가 있다. NLP에서는 이걸 ‘앵커링’이라고 부른다. 마치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닻(Anchor)을 내리는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 아주 행복했던 기억을 특정 신체나 물건에 단단히 묶어두는 작업이다. 아이들이 이 키캡을 누를 때마다 그때의 행복한 에너지를 다시 불러올 수 있게 하기 위한 수업을 준비했다. “사회책 76쪽에 나에게 있었던 중요한 일을 떠올려 보고 시간 순서대로 써 봅시다. 선생님이 먼저 해볼게요. 태어난 날부터 쓰기로 해요. 여러분은 2017년이지요? 선생님도 태어난 날부터 쓰고(날짜는 안 쓰고 중요한 일만 썼다), 남동생이 태어난 날, 초ㄷ··· 아니 국민학교에 입학한 날, 이때가 언제더라 천구백··· 크크크 천구백팔십구년, 그리고 선생님은 3학년 때 부회장을 해봤어요. 부회장에 당선된 날도 써볼게요.”
“선생님!! 태어난 날 날짜 안 쓰셨어요!”
“비~밀!”
“계산해보면 돼. 선생님 입학한 날 날짜 쓰셨어!”
“다 기록한 사람은 사이에 행복한 기억도 추가해봅시다. 대단한 기억이 아니어도 좋아요. 하지만 떠올렸을 때 생생하게 행복한 감정이 아주 많이 느껴지는 기억을 떠올려봅시다. 짝과 함께 서로의 행복한 기억을 이야기 나눠보세요.”
“선생님 제가 처음 걸은 날 제가 행복했을까요?”
“행복했을 것 같은 순간이 아니라, 행복한 기억이 선명히 떠오르는 걸 생각해보세요. 기억도 못 할 것 같은 아기 때인데도 순간의 장면으로 행복함이 떠오를 수도 있어요. 선생님은 기어 다니는 아기 때 부모님의 사랑을 받는 순간이 떠오르기도 하거든요. 양철 밥상이었는데, 기어 다니는 아가가 밥상에 올라가려 하니까 부모님이 먹는 밥그릇과 반찬들을 바닥에 내려 아기인 선생님이 밥상에 올라갈 수 있게 해주신 기억이 나요. 그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아기가 받은 것이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장면은 희미해도 행복한 감정이 선명하고 생생하게 느껴지는 기억도 있어요. 아무튼 내가 생생하게 행복한 감정을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면 좋아요.”
조잘조잘 웃으면서 이야기 나누는 모습들,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아이들은 없었다. 그런 후 키캡을 나눠주었다.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미리부터 교실에 준비해 둔 키캡을 본 친구들은 언제 줄 거냐고, 정말 주는 거 맞냐고, 재차 확인하는 아이들도 있던 중에 드디어 키캡을 각자 하나씩 갖게 되었다. 그리고 행복한 기억을 묶어두는 작업을 시작했다.
“자 그러면 이젠 모두 눈을 감고···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봅시다··· 행복한 그 때를 생생히··· 떠올려··· 봅니다···”
마이크의 에코를 올려 마치 최면에 걸듯 아이들에게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는 안내를 했다. 나중에 들은 이때의 아이들 소감은 이렇다.
“제가 행복해서 눈물을 흘렸던 때를 다시 떠올리니까 다시 행복해지며 진짜 눈물이 났어요.”
“제가 엄마랑 축구 할 때가 행복했는데 눈을 감으니까 제 눈앞에 축구 하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어요.”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기분이 정말 좋아졌어요.”
“선생님 저는 제가 태어날 때 엄마, 아빠가 행복해하시던 장면이 보였어요!”
역시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잘 떠올렸다. 모두 행복한 기억에 몰입해있는 것 같은 순간, “자 그러면 손에 엄지를 눌러 키캡에 그 행복한 순간을 저장해주세요. 언제든 누를 때마다 떠오를 수 있게 저~장 해주세요. 다함께 저~장!”
“저! 장!”
아이들과 함께 저장을 외치며 키캡을 눌렀다. 딸깍! 잘 저장되게 여러 번 눌렀다. 급하게 누르면 안 되고, 우리가 천천히 호흡하듯 눌러야 한다고 알려줬다. 혹시 키캡을 잃어버리면 행복한 기억이 사라진다고 느낄까 봐, 키캡에 저장하기보다 엄지 끝에 저장한다는 느낌으로 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앵커링 작업을 마치고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행복한 기억을 저장하고 싶은데 자꾸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슬픈 기억이 저장된 것 같아요···”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러면 안 되기에 얼른 알려줬다.
“그럴 수 있어요. 슬픈 경험이 너무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걸 덮을 수 있는 더 큰 행복을 자꾸 떠올려서 저장해요. 그리고 앞으로 사소하게라도 행복한 순간이 생길 때마다 저장하기로 해요. 키캡을 누르며 엄지손가락에 계속 행복한 기억을 쌓아주세요. 슬픈 기억이 행복한 기억에 눌리고 눌려 납작해질 수 있게! 그러면 돼요.”
그리고 마지막 작업으로는, 파츠 붙이기를 했다. 나의 행복한 기억과 연결되는 파츠를 골라 붙이기로 했다. 반응은 또 한 번 열광적!! 파츠를 이렇게나 좋아할 줄이야.
나중에 우울하거나 힘들 때 스트레스받을 때, 키캡만 눌러도 뇌가 자동으로 그때의 행복한 감정을 기억해내어 기분을 전환할 수 있게 도움이 되면 참 좋겠다. 우리 반이 함께 행복한 순간이라 생각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외쳐야겠다.
“얘들아 우리 지금 이 순간을 키캡을 눌러 엄지에 저~장 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