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7. 23:10ㆍ따뜻한 토론교육 가을호(제1호)/교실 이야기
모없지토론모임 박경자
2021. 7. 23. 금요일
잠이 쉽게 오지 않는 밤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금요일이 주는 피곤함과 샤워로 인해 몸이 나른하고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하지만 그냥 이대로 자버리면 오후에 있었던 아기참새와 강빈이의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가 사라질 것이다.
오후에 학교에서 있었던 1일 구조 대원 강빈이와 아기참새의 훈훈한 소동은 더위에 지친 나에게 강빈이가 준 최고의 선물이다.
이야기는 여름 방학식을 마치고 친구들이 일찍 하교하거나 방과 후 수업을 기다리던 오후 2시 넘어 시작된다. 교무실에서 여름방학 동안 해야 할 텃밭 관리 계획과 방학에도 진행하고 싶어서 모량 텃밭 장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교장, 교감께는 이미 허락을 받은 상태라 계획을 세워 공문으로 기안만 하면 되었다.
갑자기 교무실 문이 열리고, 강빈이가 손바닥에 죽은 듯한 참새 한 마리를 올려 들어왔다. 그 뒤로 가온이, 민제, 훈진이, 한별이 등 3학년이 왁자지껄 떠들며 따라 들어온다. 2층 과학실 물받이 통 안에 보금자리를 튼 참새 둥지에서 아기참새가 바닥에 떨어졌는데 강빈이랑 3학년 친구들이 보고는 주워 온 것이다.
“체육샘! 참새가 다쳤는지 꼼짝도 안 해요. 그런데 심장은 뛰고 조금씩 움직이는데 어떻게 해요?”
가만히 아기참새를 살펴보니 약간 움직이기는 해도 살리기는 힘들 것 같아서 “너무 작아서 우리가 살리기는 힘들 것 같다. 그냥 화장지로 덮어주었다가 나중에 묻어주자.”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강빈이와 3학년 친구들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고, 난 내 말을 따르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아기참새는 잊혀졌다.
날도 덥고, 오늘은 방학식이라 친구들에게 뭔가 선물을 하나씩 주고 싶어서 중앙현관에 걸어둔 게시판에 A4용지로 이렇게 인쇄해서 붙여놓았다. 여름방학 동안 꼭 하고 싶거나 해야 할 일을 적고 자기 이름을 그 밑에 적으면 오늘 바로 내가 아이스크림을 내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일일이 중앙현관을 지나다니는 친구들에게 그 내용을 보라고 이야기했다. 1학년 지우, 예서, 지수부터 6학년 에스더, 연수, 한비까지 우리 학교 3분의 2 이상의 친구들이 메모지에 글을 적어 붙였다. 그 친구들을 데리고 학교 뒷문에 있는 우리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4학년 수영이는 숟가락으로 퍼먹는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사고 싶다는 걸 억지로 말려서 콘 아이스크림을 먹도록 했다.
절반 이상의 친구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는데도 3만 원이 넘지 않았다. 작은 구멍가게다 보니 쮸쮸바가 천 원이나 하는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4시가 넘어 3학년 훈진이와 민제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학교로 들어가려는데 강빈이가 자전거를 교문 앞에 눕혀놓고는 손에 접시 같은 걸 들고 나를 급히 부른다.
“체육샘! 아기참새가 기운을 차렸어요. 이것 보세요. 그런데 한 손으로 들고 자전거 타고 오다가 떨어뜨렸는데 괜찮을까요?” 기쁨 반 걱정 반으로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말들을 쏟아놓는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맞다! 그 아기참새구나.' 싶어 "강빈아, 지금까지 아기참새 살렸구나. 저기 현관 앞 마루로 가서 보자."라며 강빈이에게 화장지로 곱게 둘려 있는 접시를 받았다. 둘이 마루에 앉아서 아기참새를 살펴보았다. 정말, 아기참새는 기운을 차려서 마루에 올려놓으니 접시에서 나와 돌아다닌다. 아직은 하늘을 날 정도는 아니지만 마루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또 바닥에 떨어졌다. 호기심 많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보니 모량초등학교 참새가 맞는 것 같다. 참새들도 우리 학교 친구들을 닮았다. 강빈이에게 '어떻게 간호했길래 애가 기운을 차렸니?' 하고 물으니 집에 가져가서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붓고 아기참새를 두루마리 휴지로 싼 뒤에 따뜻하게 해주었다고. 그리고 이 더운 날씨에 보일러 온도를 35℃까지 올리고, 주사기에 물을 넣어 먹였다고 했다. 또 배가 고플까 봐 달걀을 삶아 노른자를 주었는데 먹지 않았다며 걱정했다. 달걀을 삶다가 손가락을 데었다는 이야기도. 너무 놀라서 당장 치료하러 교무실 가자니 이제 괜찮다며 계속 아기참새만 보고 있다. 아기참새 이야기를 들었는지 훈진이와 민제가 왔다. 민제는 플라스틱 생수병을 잘라 만든 화분에 든 아기 은행나무를 들고 와 강빈이에게 준다.
“ 형, 이거 내가 가지고 있었어.” “ 응.” 강빈이가 받아서 마루에 올려놓았다. 그 은행나무는 체육 시간 수업하다 운동장에서 강빈이가 찾은 것이었다. 한 달 전 체육 수업하다 말고 강빈이가 “선생님 이거 무슨 싹이에요?” 난 “응, 은행나무네. 이것 봐! 이 두꺼운 은행 껍질을 까고 싹이 나왔지?” 강빈이가 "교실에서 키울래요."라고 말하더니 한 달이 넘는 오늘까지 교실에서 키우고 있었다.
다시 아기참새 이야기를 이어간다. 난 강빈이에게 넌 최선을 다해 아기참새를 살렸으니 이제부터는 아기참새에게 달린 것 같다며 마루에 두자고 하니 2층 과학실 외관 벽에 뚫린 물받이 구멍을 가리킨다.
“샘, 저기서 떨어졌어요. 저기가 집인 것 같아요.” 정말 엄마 참새가 부지런히 먹이를 나르고 있었다. 강빈이랑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돌봄 선생님도 오고, 연구부장도 퇴근하다가 우리를 보고 왔다가 강빈이 이야기를 듣고는 '둥지에 넣어줄까?' 한다.
난 연구부장에게 “저기까지 손이 닿을까요? 그리고 2층 난간 위험한데.” 연구부장이 “한번 해보죠!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러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좀 있으니 연구부장이 과학실 난간에 나타나 둥지인 물받이 구멍에 손을 뻗어 보고 가능하다며 아기참새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강빈이가 얼른 아기참새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과학실 난간 위에서 연구부장이 조심스레 물받이 구멍 참새 둥지에 아기참새를 넣어주었다. 돌봄 선생님과 옆에서 지켜보던 1학년들이 손뼉을 쳤고 난 동영상을 찍었다. 그렇게 아기참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연구부장도 퇴근, 돌봄 선생님도 교실로, 1학년 친구들도 하교했다. 강빈이와 둘이 남아서 계속 2층 물받이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빈이에게 중앙현관에 내가 붙인 종이를 보고 오라 하니, 갔다 와서는 적었다며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한다. 둘이 슈퍼에 가니 강빈이가 주물러 쮸쮸바를 고른다. 우린 다시 마루로 돌아와 계속 아기참새를 살펴보았다.
솔직히 강빈이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은데 사춘기에 접어든 강빈이가 싫어해서 그냥 옆에 앉아 이야기만 들어주었다. 아기참새를 살린 무용담을 듣자니 강빈이를 처음 만난 2019년이 떠오른다. 그때 강빈이는 4학년이었다. 3월 초 출근하는 나에게 자기 집 이야기랑 부모님 이야기를 다 털어놓는 강빈이를 보고 많이 놀랐다. 더 이상 강빈이의 사생활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이제 어디까지나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니..... 그런 강빈이가 조금씩 달라졌다. 물론 강빈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우리 학교 드론 축구부지만. 난 작년에 강빈이에게 개인 드론 강습을 받았다. 수강료는 인스턴트 베트남 쌀국수와 짜장면, 탕수육이었다. 모두가 하교한 뒤 강빈이는 그 추운 복도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퇴근 시간이 되면 나에게 드론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교무실에서 컵 쌀국수를 먹고 내 차를 타고 하교했다. 그해 겨울 강빈이 아버님은 나에게 김장김치 한 통을 주셨고, 어머님은 김치가 떨어지면 언제든지 주겠다고 하셨다.
이제 강빈이에게서 4학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아니 5월 아화초랑 친선 드론 축구를 할 때만 해도 부정적이며 남 탓만 하던 강빈이, 단톡방에 욕설을 많이 해서 나에게 경고받던 강빈이의 모습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내가 강빈이에게 '너 4학년 때 나한테 부모님 흉 많이 봤지?'라고 하면 '제가 언제요?' 하는 강빈이 모습에서 난 강빈이의 밝은 가능성을 본다. 해지는 강가의 노을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올리고, 죽어가는 아기참새를 집에 데려가 정성으로 간호하고, 친구가 키우기 싫은 누에고치까지 키우는 강빈이가 자꾸 좋아진다. 강빈이를 비롯한 에스더, 시원이, 연수, 한비, 민우까지 6학년 친구들이 너무 좋은데 이제 2학기 한 학기만 6학년과의 수업이 남았다.
아쉽다. 하지만 남은 시간 동안 함께 하는 좋은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 것이다. 당장 체육 교과서에 있는 캠핑부터 여름방학에 꼭 해야 한다. 6학년 친구들이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캠핑, 아무리 코로나 확진자가 늘더라도, 학교와 부모님들의 반대가 있더라도, 6학년 친구들이 원하면 나는 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임을 알기에~
나에게 좀 더 글 쓰는 재주가 있다면 우리 모량 친구들의 이야기를 동화로 쓰고 싶다.
계속 글 쓰다 보면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 동화든 수필이든 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