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15. 21:55ㆍ따뜻한 토론교육 가을호(제3호)/토론 이야기
내 교실을 넘어선 토론 후 활동
군포토론모임 이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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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방과 후에 모여서 어떤 내용으로 포스터를 만들지 의논했다. 한번은 6교시를 마치고 내게 와서, 학교에 남아서 포스터를 좀 만들고 가도 되느냐 허락을 구했다. 나는 그러라 했다. 나도 일을 해야 했기에 40분이라는 시간제한을 두었다. 세 녀석이 머리를 맞대고 모여 앉아 이러쿵저러쿵하는 모습이 참 이뻤고, 시간이 다 돼 가는데 내가 눈치 못 채고 바쁜 것에 자기들끼리 재밌어하며 거의 한 시간이 넘도록 열심히 만들다가 하교했다.
다음 날 쉬는 시간, 자신들이 완성한 포스터를 복도에 붙여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또 그러라 했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였을까? 포스터는 다른 반 아이들 눈에 띈 지, 채 10분도 되지 않은 사이 떼어졌다. 포스터에는 찬반에 답하는 붙임딱지가 고작 다섯 개 붙여져 있었다. 물론, 다 찬성편에. 포스터는 스케치북 8절지 크기이고, 굵은 글씨로 ‘학생 5층 엘리베이터 사용’이라고 쓴 제목 아래 근거 두 가지가 적혀 있었다. 그 바로 아래에 5층에 있는 학생들이 엘리베이터를 사용해도 되는지를 묻는 찬반 (붙임딱지 붙이는) 자리가 그려져 있었다.
학생 2, 3, 4는 1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5분) 동안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중앙 계단 한쪽 벽면에 포스터를 붙였다. 2교시가 시작됐고 우리 반은 체육 전담 수업으로 아이들은 강당에 가고 없었다. 나는 교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휴대폰 6학년(전담 교사 포함 총 9명이 있음) 단톡방 알람이 울렸다.
내 옆 반 선생님이 아이들이 붙인 포스터를 사진 찍어서 단톡방에 올리며, ‘방금 붙이고 갔는데...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를 적어 놓았네요.’라고 덧붙였다. 나는 ‘저희 반 애들이 붙였습니다. ~_~;’라고 톡에 답했고, 곧이어 부장 교사(6-1)가 ‘이거 누가 붙인 건가요? 떼세요. 어제 전교 회의에서 규칙 정했답니다.’라고 단톡방에 썼다. 나는 ‘아이들에게 떼야 한다고 전하겠습니다.’고 썼다.
이렇게 셋이서 총 여섯 개 정도의 짧은 톡을 주고받았는데, 2교시 마치기 5분 전 우리 반 교실을 지나가며 부장 교사는 “선생님, 포스터 떼세요! 아이들 보기 전에 떼세요.” 내게 명령하듯 말하며 급히 가버렸다. 나는 얼굴로 씁쓸한 미소를 보내며 (마스크를 써서 눈만 보였겠지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곧 쉬는 시간 종이 울렸고,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로 몰려왔는데, 뒤이어 바로, 우리 반 학생 5가 아랫부분이 약 10센티미터 정도 찢어진 그 포스터를 내게 가져왔다. 우리 반 아이들은 이미 뭔가 이상하고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는 분위기로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학생 2와 3은 내게 와서 이걸 누가 뗐냐고 묻는데 나도 답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몰랐기 때문이다. 부장 선생이 뗐는지 옆 반 쌤이 뗐는지 아니면, 선생이 시켜서 제3의 학생이 뗐는지 알 수 없었다. 그걸 들고 있던 학생 5 또한, 학생 6이 들고 있는 걸 자기한테 줘서 갖고 왔을 뿐이란다. 학생 6은 그걸 떼서 자기 손에 쥐여준 선생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단다. 기억할 수 없으니, 누군지 모른다는 거다. 아마 학생 6은 우리 반에서 겁이 많고 가장 소심한 학생이라, 누군지 알아도 그 순간 말해도 되나 싶었을 것 같다.
그 짧은 쉬는 시간 5분 동안, 반 전체 아이들은 약간 흥분한 상태로 뒤숭숭한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교실과 복도에는 눈이 많기에 포스터를 붙이고 떼는 일이 일어날 때 분명히 본 사람들이 있었다. 포스터를 뗀 사람이 1반 선생님과 옆 반 선생님 중 한 분이라는 것으로 아이들 생각이 좁혀졌다. 학생 2와 4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황당해했다. 학생 3은 꽤 화가 났다. 포스터를 만드는 데에 가장 공을 들인 아이였다. 학생 3은 포스터를 뗀 선생님께 찾아가서 ‘왜 뗐느냐’고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아마, 따지고 싶었을 게다. 그런데, 내가 가지 말라고 했다. 학생 2와 4는 똑같은 내용으로 포스터를 다시 붙이겠다고 했다. 이것도 내가 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면,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될 테니 말이다. 나는 학생 셋을 달래며 이다음으로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말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게 달리 떠오르지 않는다면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고 아이들을 위로했다. 그런데, 나도 화가 났다. 나도 위로받고 싶었다.
내가 화난 점은 두 가지다. 첫째,...

-다음 회보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