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토론 배움터는 무엇인가

2022. 11. 15. 22:22따뜻한 토론교육 가을호(제3호)/토론 이야기

여름 토론 배움터는 무엇인가

서울토론모임 임윤지

 

2년간 토론 모임을 쉬었습니다. 2년간 토론 모임을 참 많이 그리워했습니다. 그렇게 2년의 쉼을 끝내고, 서울 토론모임으로 다시 돌아왔어요. 모임 선생님들을 오랜만에 처음 만난 날은 정순샘께서 여름 배움터에서 말씀하신 대로 친척을 만나는 기분이었어요. 어색함은 느낄 수 없었고, 반가움만 있었죠. 그 반가운 마음을 여름 토론 배움터에서 이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참여한 토론 배움터의 이틀 동안 참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어요. 그 소중한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글로 남겨 보려 합니다.

 

[토론 왜 하나]

 

여러 선생님들과 같이 저도 영근샘의 연수와 책으로 토론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별다른 고민 없이 배운 것들을 교실에 그대로 써먹었지요. 논제, 토론 공책, 토론 방법, 모두 읽고, 배운 대로 옮겨 실천하느라 바빴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저도 토론을 즐겁게 가르칠 수 있으니 좋았어요. 그런데 영근샘 따라 하기 작전에서 늘 실패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토론의 시작, 전개는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는데 항상 마무리가 어려웠지요. ‘논제 분석했고, -반 근거 모두 찾고, 입안문도 썼고, -반 입장이 되어 토론도 해봤고.. 그래서? 그다음에는? 바로 토론의 마무리활동이 그 한계였습니다. 풀리지 않는 부분이었으나 모른 척하고, 마무리 단계 활동은 얼버무리며 매듭짓기 바빴지요. 저도 사실 토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저만의 정답을 찾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토론 배움터 때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영근샘과 여러 선생님의 사례 발표, 직접 해본 둘둘 토론, 그리고 페들렛에서 본 한 줄의 문장 덕분이었습니다.

 

보이텔스바흐의 협약 - 논쟁적인 것은 논쟁적인 것으로 남겨둔다.’

 

** 선생님이 페들렛에 남겨주신 글에서 본 문장이었어요. 보이텔스바흐가 무엇일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라 찾아보니 독일의 정치 교육 지침이라고 합니다. 정치교육을 위한 한 문장이 토론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한 문장으로 앞서 토론 배움터 2일간 느꼈던 것들이 모두 정리되는 느낌이었어요.

 

결국 토론은 너와 나의 생각을 알아보고, 서로 조금 덜 오해하고, 조금 더 이해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결론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너와 나-으로 나뉘어 달리던 평행선이 하나의 점에서 만나지 않아도 됩니다. 서로의 평행선 위에 어떤 생각들이 존재하는지 알아보고, 그 생각 중 어떤 부분은 공감하고 존중할 수 있는지 찾아보는 시간이 토론입니다. 세상에서 논쟁적인 것을 삭제하고, 단 하나의 의견만 남겨둔다면 참 재미없을 겁니다.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론이 끝날 무렵, 선생님이 꼭 어느 쪽으로 손을 들어주지 않아도 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친구가 어떤 입장인지 이해하고, 그 입장이 우리 반 삶에 어떻게 반영되면 좋을지 고민하는 시간으로 이어지면 됩니다.

 

결국 토론은 토의를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쪽이 되지 않더라도, 서로의 입장을 반영하여 조금 더 평화롭게 지낼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토론이 끝나고 난 뒤라면 그 방법을 찾는 방법은 꽤 쉬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찬-반 근거로 정리도 해봤고, 그 근거로 토론하고, 질문하며 서로를 알아갔으니까요. 서로 염려하는 부분을 알았으니, 토의는 조금 더 부드럽고 평화롭게 진행될 겁니다. 이제 토론 끝날 무렵, “~ 토론 끝~ 다음 수학 시간 준비하자.”라고 급하게 아이들을 쉬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선생님~ 누가 이겼어요?”, “선생님! 그래서 찬성 많으니까 찬성대로 하는 거예요?” 말에 당황해서 앞으로 이러면 토론 안 할 거야!”라고 으름장을 놓지 않아도 됩니다. 영근샘 교실처럼 각자의 입장이 담긴 논제 분석 종이를 교실 뒤에 걸어두고, 친구들 생각을 펼쳐두기도 하고, 그 이야기를 토의로 담아 우리 반 만의 지혜로운 결론에 이르면 됩니다.

 

머리로 이해했던 것들을 마음으로 이해했습니다. 이제 몸으로 실천해보려 합니다.

 

[언제 이렇게 굳어져 버렸나]

 

토론 배움터는 토론에 대한 제 생각 정리만 도와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삶에서 제가 잠시 놓치고 있었던 중요한 부분을 건드려주었어요. 바로 말랑함입니다.

 

토론 모임의 가수 한재경 선생님의 노래 메들리가 이어지던 뒤풀이 자리였어요.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재경샘, 손을 흔들며 노래에 답해주는 여러 선생들, 노래를 따라 부르는 여러 선생님의 입 모양, 그리고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제가 보입니다. 심지어 따라 부르기 쉽게 재경샘이 한 소절 앞서 다음 소절 가사를 빠르게 알려주셨는데도 입이 떼어지지 않습니다. 제 화면만 정지 화면인 줄 알았습니다. 그 장면이 참 어색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노래를 들어도 팔짱 끼고, 얌전하게 노래만 듣던 저였다면 별로 놀랄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노래 따라 부르는 것은 기본, 흐르는 노래에 눈물도 흘리고, 흥에 겨워 몸을 흔들기도 하던 저였기에 이런 제 모습에 많이 놀랐습니다. ‘아니, 나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어쩌다 이렇게 굳어져 버린 걸까?’ 변한 내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서글프게 느껴졌습니다. 그 서글픔을 느끼며 재경샘의 노래를 계속 들었고, 아마 마지막 곡쯤에는 조금 몸을 흔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서글픔은 며칠 동안 이어졌고, 저는 굳어져 버린 저를 말랑하게 만들기 위해 나름의 애를 썼습니다. 맥주 한 잔과 유튜브로요. 집에서 유튜브 노래방으로 몇 곡을 불렀는지 모릅니다. (재경샘이 부르셨던 이소라 노래가 참 좋아 도전했는데 비참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완곡했어요.) 그랬더니 예전의 제가 가지고 있던 말랑함이 조금 돌아왔습니다. 한 곡 더 불러서, 완벽히 말랑해지려 했으나 밤이 늦었습니다. 저희 이웃들의 숙면을 위해, 유튜브를 껐습니다.

 

다음 토론 배움터 때는 선생님들의 노랫소리에 풍덩 빠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

 

토론에 대한 저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굳어졌던 감성을 녹일 수 있었던 여름 토론 배움터. 참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삶으로 잘 이어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