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19. 21:27ㆍ따뜻한 토론교육 가을호(제3호)/사는 이야기
달산책 모임 이야기 - 가방을 쓰고 싶은 날
군포토론모임 장양선
+ 오중린 선생님과 함께하는 아이 책 모임 이야기입니다. 모임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는 오중린 선생님 글에 있어요.
달산책 모임도 벌써 세 번째 모임을 했다. 첫 번째는 온유가 추천한 ‘기분 가게’, 두 번째는 현이가 추천한 ‘사라진 루크를 찾는 가장 공정한 방법’. 오늘 세 번째로 하랑이가 추천한 책은 ‘가방을 쓴 아델’이다. 처음에 하랑이가 책을 들고 왔을 때 처음 보는 책이기도 했고 내가 혼자 책을 읽었다면 고르지 않았을 표지와 느낌(?)이었다. 옷도 늘 비슷한 모양과 색의 옷을 입듯이 책도 좋아하는 느낌의 책들이 따로 있다. 새 옷을 사도 비슷한 옷만 사서 사람들이 눈치를 못 채듯이 어쩌면 책도 늘 비슷한 책만 읽어서 나의 머리와 가슴에 감동이 덜한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랑이가 들고 온 책은 내가 전에 잘 입지 않는 옷 같았다. 그래서 새롭다. 신난다.
하랑이가 서툰 목소리로 책을 읽어준다. 중간중간 틀리기도 하고 더듬거리기도 하는데 여러 사람 앞에서 책을 읽어주려니 얼마나 떨릴까 하는 생각도 들고, 어른이 매끄럽게 읽는 것보다 정감이 있어서 좋았다. 책에 나오는 아델은 부끄러움이 많아서 가방을 쓰고 다닌다. 맙소사! 이 부분부터 이 책이 마음에 와닿았다. 뭔가 부족한 것이 있는 사람, 아픈 사람, 눈물이 있는 사람은 눈길이 간다. 아델은 가방을 쓰고 소리만 듣고 공장에서 일한다. 그게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어느 날, 아델은 두려움에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그 눈물을 맞고 가방에서는 꽃이 피어난다. 그리고 아델은 마침내 가방을 벗고 자기가 일하던 공장도 떠나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가방을 쓰는 아델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수줍음을 안 타서 이해하지 못하겠다, 답답할 것 같다, 오히려 더 불안할 것 같다는 이야기들을 했다. 하지만 ‘혹시 어느 순간에는 가방에 들어가고 싶은 적이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에는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얼굴에 침이 묻었을 때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났을 때요.”
“만났다가 그 사람이 별로인데 그 사람은 계속 나를 좋다고 할 때 가방을 쓰고 싶어요.”
“친구들이 외모로 놀릴 때 쓰고 싶어요.”
“외모가 마음에 안 들 때요.”
“공연하다가 틀렸을 때요.”
“나도 공연할 때 틀리면 창피해서 들어가고 싶을 것 같아요.”
“가방을 쓰면 창피해서 가방을 쓰고 싶을 것 같아요.”
가방을 쓰는 아델은 이해가 안 되었지만 그래도 내 삶의 어느 부분에서는 아델과 같은 순간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색은 여러 가지니까 그중에서 여느 때는 아델과 같이 가방에 숨고 싶을 때도, 어느 때는 가방을 던지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오늘도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간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안진영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이 시를 다음에 만나면 아이들에게 들려줘야겠다. 그리고 가방을 쓰고 싶은 마음, 까만색 크레파스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기억하고 싶다.
까만색 크레파스
안진영
오늘은 나
세상에 없는 듯 조용히 있고 싶어
오늘 나를 부르려거든 제발
까만색 도화지를 준비해 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