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8. 22:05ㆍ따뜻한 토론교육 봄호(제4호)/토론 이야기
토론, 논제와 근거 이야기
서울토론모임 한정욱
작년 6월, 포켓몬빵 열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아이, 젊은이, 부모 세대, 심지어 노년 세대까지도 편의점 앞에 줄을 서서 포켓몬빵 속에 든 띠부씰 모으기에 열을 올렸다. 아이들은 현재 진행형 취미의 기쁨을 위해, 젊은이는 추억을 소환하는 즐거움으로, 부모 세대는 자녀와 취미를 공유하기 위해, 노년 세대는 손주 사랑을 얻고자 모두 띠부씰 모으기에 열심이었다. 뉴스에서도 포켓몬빵 열풍에 따른 각종 사건 사고 기사를 다룰 만큼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던 참이었다.
5학년 우리 반 아이들도 아침마다 ‘어제 빵을 몇 개 샀느니, 얼마를 썼느니, 몇 시까지 편의점을 돌아다녔느니…. ‘ 하는 이야기들을 하곤 했다. 처음엔 한두 명이 하더니 어느새 제법 많은 아이들이 포켓몬 띠부씰 수집 간증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휴 아이들을 이대로 두어도 되나… 이걸 한번 가르쳐야 하나... 그냥 빵 사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 하지만 자기 돈인 데다 부모님도 같이 가서 사주는데 내가 뭐라고…. 음.... 그럼, 잔소리 대신 토론으로 지도해 볼까?’ 하는 결론까지 이르렀지만, 도대체 포켓몬빵 띠부씰 모으기 열풍에 대한 논제를 뭐라 정리해야 할지 너무 애매했다. 고심 끝에 내가 정한 논제는 아래와 같다. (너무 부끄럽지만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용기 내 나눈다)
[포켓몬빵 열풍, 이대로 괜찮은가?]
칠판에 써 놓고 보니 찬성과 반대의 처지가 또렷이 나뉘지 않는다. 찬성은 과연 무엇이 괜찮고, 반대는 또 무엇이 괜찮지 않다는 것인가? 결국 한 번 더 고민해 쓴 것이 '찬성 - 나는 포켓몬 빵을 마음대로 사도 된다고 생각한다 / 반대 - 나는 포켓몬 빵을 살 때 주의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찬반 토론 논제라고 하기엔 다시 봐도 우습기만 하다. 또렷하지 않은 논제로 어찌어찌 토론을 마쳤지만, 그날의 찜찜함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을 만큼 논제 정하기로 고민이 되었다.

초등토론교육연구회 모임에서 나의 경험을 나누었더니, 선생님들이 함께 좀 더 또렷한 논제로 다듬어 보자고 하셨다. 모임 선생님들의 의견을 모아모아 [포켓몬 빵을 사기 위해 집 밖에서 10시까지 기다려도 된다]로 논제가 정해졌다. 이제 좀 또렷하다.
한결 가뿐한 마음으로 일주일 후에 다시 한번 토론했다. 찬성은 “포켓몬 빵을 사기 위해 10시까지 기다려도 된다.” 반대는 “포켓몬 빵을 사기 위해 10시까지 기다리는 것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하고 나니, 찬성하는 친구들도 반대하는 친구들도 주장에 대한 근거를 다양하게 이야기한다.

앞으로 또다시 [포켓몬빵 열풍 이대로 좋은가? ]처럼 논제 정리가 애매한 경우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토론 모임을 통해 찾아낸 나의 방법은 이렇다.
논제의 초점을 좁힌다.
초점을 좁힌다는 말은 ‘정말 불편하고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를 찾아낸다는 뜻이다.
‘포켓몬빵 열풍, 이대로 괜찮은가?’의 논제를 예로 들어 좁혀보자면,
경제관념, 용돈 관리, 과소비가 문제라고 생각이 든다면 [포켓몬빵을 사기 위해 (초등생이) 내 용돈을 다 써도 된다.] (또는 한 달에 3만 원 이상을 써도 된다.)
환경, 먹지도 않고 버려지는 빵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면 [띠부씰을 모으기 위해 먹고 싶지 않은 포켓몬빵을 살 수도 있다.]
학급 내 띠부씰 관리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면 [띠부씰을 학교에 가져와도 된다.]
학생 안전,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포켓몬 빵을 사기 위해 집 밖에서 10시까지 기다려도 된다.] 등이 예가 될 수 있겠다.
이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내가 그 당시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며 걱정됐던 부분은 늦은 시간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계획 없이 용돈을 쓰는 모습이었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가 또렷한 논제를 정해 다시 토론한다면, ‘포켓몬빵을 사기 위해 내 용돈을 다 써도 된다.’로 정하고 싶다.
이렇게 정해진 논제에 대한 근거는 찬성 근거와 반대 근거라는 말 대신 각각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해 보자.’라고 하면 아이들이 술술 이야기를 잘 풀어낸다. 그동안은 이렇게 풀어낸 장점과 단점이 곧 찬성과 반대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 후에, 바로 입론을 쓰거나 1대1 토론하곤 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풀어낸 근거에서도 가르치고 배울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주장과 관련 없는 근거 찾기다. 이때 주의할 것은 자신이 발표한 근거가 주장과 관련 없다고 지적(?)당하는 친구들이 받을 수 있는 수치심 또는 부끄러움이다. 조금이라도 이런 것을 줄이는 방법은 모든 근거가 모인 후에 주장과 관련 없는 근거를 찾아보는 것이다. 한 명 한 명이 발표할 때마다 즉시로 주장과의 관련성을 따졌던 적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발표에 부담을 느껴 모두 손을 내려버린다. 심하게는 상처받은 감정을 교사와 친구들 앞에서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근거를 모두 모은 후에 살펴볼 때도, 교사가 직접 “이러이러한 이유로 적절하지 못합니다.”라고 찾아내기보다는 친구들끼리 함께 고민해 볼 시간을 주고, “이러이러한 이유로 관련이 적은 것 같아요”라고 찾아낼 때 아이들 안에서 배움이 더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아래 사진에서 보면, [포켓몬 빵을 사기 위해 10시까지 기다려도 된다]의 찬성과 반대 근거로 관련이 적다고 찾아낸 것들은 (반대) 노란색 2,3,4,5,9,10,11,12번, (찬성) 빨간색 3,4,6번이다.)

찾아낸 근거를 보며 할 수 있는 활동들은 이 외에도 비슷한 근거끼리 묶어보기, 근거보다는 근거자료로 적합한 것 찾아보기, 근거와 관련된 경험 나누기 활동(매우 재밌어한다. 이것만으로 한 시간이 지나기도 한다. 이렇게 나눈 경험은 근거에 대한 근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등이 있다.
정말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논제를 또렷이 하고, 정해진 논제의 장점과 단점을 살펴 근거를 찾고, 찾아낸 근거를 모두 함께 찬찬히 살피며 가지치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포켓몬빵 열풍이 나에게 준 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