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9. 00:15ㆍ따뜻한 토론교육 봄호(제4호)/교실 이야기
그건 그거고!
-쿨한 아이들 이야기-
모없지토론모임 유민아
2004년 발령 2년 차였다. 나는 2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다. 발령 초기에 저지른 숱한 실수를 만회하고 잘 가르치는 교사로 거듭나기 위해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참교사(!)가 되리라는 꿈을 품고 아침 활동, 점심 활동, 방과 후 활동까지 학급 활동을 알차게 구성하여 운영했다. 아침 활동은 아침 독서하기, 방과 후 활동은 나머지 공부하기, 선생님과 상담하기 등으로 비교적 계획한 대로 잘 운영되고 있었다. 그런데 점심 활동 중 급식 먹기가 항상 어려웠다.
점심시간이 되면 나는 아이들이 질서 있게 급식을 받아 골고루, 꼭꼭 씹어서 잘 소화하고 잔반 없이 잘 비우도록 지도했다. 그래서 나는 미어캣처럼 급식 먹는 도중에 수시로 고개를 들어 우리 반 아이들을 살폈다. 다 먹은 아이들은 자랑스럽게 나에게 가져와서 잔반이 없음에 칭찬을 가득 받고 퇴식구에 식판을 반납했다. 물론 30여 명의 학생들을 모두 정확하게 식판 검사를 하기는 어려웠다. 그것도 매일은. 여기에 느리게 먹는 몇몇 아이들을 기다리는 것도 힘들었다. 빨리 먹은 아이들이 급식실 한쪽에서 다른 아이들을 기다리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날은 급식을 늦게 먹는 아이들에게 교실로 잘 돌아올 것을 당부하고 미리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급식실을 나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인사를 하고 아이들을 배웅하며 하교시켰는데, 우리 반 단짝이었던 희영이와 지연이가 집에 가지 못하고 교실에 남아 있었다. 희영이는 가방끈을 만지작거리면서 자꾸 나를 바라봤다. 마치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영이는 무언가 불편한 듯 얼른 교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나는 업무처리를 하면서도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고 곁눈질로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그때, 희영이가 내 책상으로 오더니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지연이가 선생님 몰래 김치를 급식실 바닥에 버렸어요. 그리고 선생님께 식판 검사 받았어요."
으엥? 충격적이었다. 2학년이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나? 나는 당황하면서 지연이를 쳐다봤다. 지연이는 친구의 고자질에 고개를 푹 숙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우선 사실 확인을 먼저 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지연아, 그게 사실이야?"
"....네...."
지연이는 자기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었다. 그런데 잠깐! 이상했다. 희영이와 지연이는 우리 반에서 둘도 없는 단짝이다. 그런데 아무리 옳지 못한 일이라고 판단해도 그렇지, 단짝의 일을 이렇게 고자질하는 희영이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지?
나는 희영이의 표정을 살폈다. 희영이는 친구가 나쁜 행동을 했지만, 사실대로 선생님께 말씀드리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 듯 당당해 보였다. 큭큭큭.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단짝의 옳지 못한 일을 단짝 앞에서 선생님께 이르는 아이, 그리고 그걸 보면서도 단짝을 원망하기보다는 자기 잘못을 뉘우치느라 고개를 못 드는 아이. 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일인가? 나는 너무 우스워 박장대소할 뻔했지만, 진지한 아이들의 체면 때문에 꾹 참았다.
"그래, 지연아, 다음부터는 안돼. 먹기 싫은 음식은 선생님한테 얘기해 줘. 알았지?"
"네."
'그런데, 희영이가 고자질해서 얘네들 사이가 틀어지는 거 아냐?'
나는 순간 이런 걱정이 됐다. 두 아이는 같은 아파트 위아래 층에 사는 사이로 등하교를 같이하고 쉬는 시간에도 둘만 노는 정말 친한 사이다. 그런데 이렇게 고자질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둘 사이가 예전 같기는 힘들 것 같았다. 큰일이었다.
"선생님, 그럼 안녕히 계세요."
희영이는 중요한 사명을 마친 듯 의기양양하게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책가방을 멨다.
"안녕히 계세요."
모기 같은 목소리로 지연이도 인사를 했다.
그때였다.
"지연아, 집에 가자!"
갑자기 희영이가 지연이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교실 뒷문으로 두 아이가 걸어 나갔다. 또다시 충격이었다. 정말 그때의 놀라움은 영화 '식스센스'급 반전이었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렇게 단짝 사이에서 한 아이가 고자질을 해서 한 아이를 난처하게 했을 때, 둘 사이 우정은 '파삭'하고 깨져버리는 게 내가 아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황급히 교실 앞문으로 나가서 신발을 갈아 신고 있던 지연이에게 물었다.
"지연아, 넌 희영이가 네 잘못을 선생님께 일러바쳤는데도 희영이가 밉지 않아? 기분 나쁠 것 같은데?"
"아니요! 기분 안 나빠요. 그리고 그건 그거고요!"
띵!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머릿속에 종이 울렸다.
'아, 아이들은 이렇구나! 친구 사이는, 진짜 친한 친구 사이는 이런 거구나!'
나는 이날 아이들에게 한 수 배웠다. '그건 그거다!'라는 정말 쿨한 아이들의 마음! 감동적이면서도 존경스러웠다.
아이들은 절친이지만 쉽게 싸우기도 하고, 쉽게 풀어진다. 친구가 잘못을 해도, 좋게 말하면 너그럽게, 나쁘게 말하면 아주 쉽게 친구를 용서해 준다. 물론 어느 정도 선이 있는 말과 행동들에만. 왜 그럴까? 아이들은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들처럼 그 속내가 무엇인지, 어떤 꿍꿍이가 있는지, 내가 여기서 사과하거나, 혹은 남을 용서하는 것이 밑지는 장사는 아닌지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다.
아이들은 친구가 좋으면 다 좋다. 속상한 일도 금방 끝이 나고 잊힌다. 다시 즐겁게 웃고 사이좋게 논다. 이렇게 쿨한 용서,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이런 것 좀 배우면 좋겠다. 조그만 잘못에도 쉽게 화내고 토라지고 원수 보듯 이를 가는 어른들, 이런 아이들을 보고 스스로를 깊게 좀 생각해 봐야 한다. 몸집도 크고 나이도 더 많고 경험도 생각도 더 크고 풍부한 어른들이지만 진짜 마음의 크기는 과연 아이들만큼 큰지, 우리 어른들 속을 좀 들여다봐야 한다.
요즘 학교에서 학교폭력 사건이 터지면, 이런 어른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아이들은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고 용서받고 이미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데, 오히려 어른들이 서로 감정이 상해서 사건을 더욱 키우고, 급기야 아이들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많아졌다.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는 옛말이 맞나 보다. 그래도 이 말이 틀리도록 어른들이 아이들처럼 좀 쿨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