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9. 00:22ㆍ따뜻한 토론교육 봄호(제4호)/사는 이야기
뮤지컬을 사랑하는 이유
군포토론모임 구련아
"공연 소비는 인터넷, 전화 등을 통해 티켓을 예매하는 행위를 시작으로 해당 공연일까지의 기다림, 공연일이 되었을 때 극장으로의 이동, 극장에 도착하여 공연 시작을 기다림, 공연이 시작된 후 관람, 관람 후 박수, 그리고 공연장을 떠나며 후기 작성까지의 총체적인 과정을 담고 있다." (민지혜, 2015)
온라인 공연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뮤지컬의 매력이 하나도 담겨있지 않았다. 분명 같은 내용의 공연인데, 재미가 없었다. 그 부분에서 내가 뮤지컬을 왜 좋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현장에서 노래를 직접 듣고 연기를 직접 느끼고 춤과 각종 연출들을 직접 보는, 살아있는 예술을 사랑한 것이다. "똑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보면 지겹지 않아?" 뮤지컬을 여러 번 보는 것은 책을 여러 번 읽거나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과는 다르다. 책과 영화는 그 속에 담긴 내용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연극과 뮤지컬은 내용을 보여주는 현장성을 사랑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공연이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날부터 그 극의 넘버를 노래 재생목록에서 철저히 배제하기 시작한다. 사실 공연은 처음 봤을 때가 가장 재미있다. 즉, 백지상태로 봤을 때 가장 재미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공연이라는 것은 이미 본 공연이라는 것이고 그렇기에 완전히 백지상태로 볼 순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공연에 대한 기억을 흐리게 하려고 그렇게 한다.
나는 경기 남부에 살고 있어서 대학로까지 왕복 4시간이 걸린다. 사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뭘까 싶다. 공연을 보러 올라가는 버스에서는 일부러 가요만 듣는다. 아무 생각 없이 극을 맞닥뜨리고 싶어서. 그렇게 가요를 들으며 창밖을 보고 있으면 참 행복하다. 마음속이 오늘 볼 공연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찬다.
140번 버스에서 내려서 마로니에 광장을 지나 공연장까지 가는 길은 상쾌하다. 마로니에 광장의 큰 은행나무는 사시사철 모습을 바꾼다. 광장에 놓인 구조물도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때는 장터를 열거나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할 때도 있다. 대학로에는 연극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이 많다. "예매하고 오셨어요?" 친구들이랑 같이 지나갈 때는 종종 물어보는데, 혼자 지나가면 물어보지 않는다. 혼자여서 그럴 수도 있고, 지도도 안 보고 공연장을 찾아가는 빠른 발걸음에서 이미 예매했다는 걸 느꼈을 수도 있다. 애매한 시간에 대학로에 도착하거나 붐비는 시간에도 운이 좋으면 배우들을 볼 때가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공연이 끝나면 극장 입구에서 퇴근길(퇴근하면서 팬들과 짧은 만남의 시간을 갖는 것)을 하는 배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대학로는 배우와 관객 간의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것 같다.
객석에 앉으면 보통 공연 시작 10~15분 전이다. 가방을 정리하고, 무대장치를 하나씩 눈으로 뜯어보며 구경한다. 여러 번 봤던 공연이라도 그때그때 보이는 게 다르다. 내 주변에 누가 앉는지도 은근히 신경 쓴다. 앞자리에 키 큰 사람이 앉지는 않는지, 옆자리 사람은 뭘 하는지 등등. 공연 시작 5분 전을 알리는 종이 치고, 공연 시작 직전엔 관람 예절과 관련된 안내 음성이 나온다. 보통 공연장에서 준비한 음성이 나오지만, 배우가 직접 안내(녹음 또는 실시간으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소소한 재미가 있다. 안내가 끝나고 객석 입구에 암막 커튼을 치는 공연장 직원의 분주한 움직임이 끝나면 서서히 암전된다.
다시 조명이 켜지면 언제 등장했을까 싶게 배우들이 무대 위에 태연히 자리 잡고 있다. 노래로 시작하는 극도 있고, 대사로 시작하는 극도 있다. 그 순간부터 객석은 사라지고 무대만 남는다. 대사를 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하는 상황도, 노래를 하다가 갑자기 춤을 추는 상황도 이상하지 않다. 제4의 벽 안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에 완전히 빠져드는 것이다. 2시간의 공연이 끝나고 객석에 조명이 켜지면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다. '오늘 공연 진짜 최고다.' 마음속으로 몇 번을 되뇌며 출구로 나선다. 정말 좋았던 공연은 그 기억이 몇 달, 몇 년을 간다. 그것이 계속해서 뮤지컬을 사랑하게 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