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수업을 안 했습니다. 교실 분위기가 그래서...

2023. 12. 5. 23:02따뜻한 토론교육 겨울호(제5호)/토론 이야기

토론 수업을 안 했습니다. 교실 분위기가 그래서...

 

군포토론모임 유준희

 

올해는 토론 수업을 안 했습니다. 우리 연구회에 발을 들인 후 해왔던 관성으로 계속할 법한데 올해는 토론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저학년이라 마냥 안 했나 싶었는데, 어느새 토론 수업을 조금 꺼리게 된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왜 그럴까 떠올려봤더니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일단 22년 아이들과는 토론 수업을 곧잘 해냈습니다. 토론에 익숙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토론을 좋아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사이에 다툼이 잦았고 중재하고 다독여야 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어찌 보면 그 다툼은 진정한 현실 토론일 수 있는데, 토론 수업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습니다. 토론 수업에서는 규칙과 예절을 지키며 참여했던 아이들은 수업을 벗어난 그 순간에는 벽창호가 따로 없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아이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대부분 생각의 다름, 이치보단 주로 교실 분위기, 기질, 정서, 관계성의 문제였습니다. 제아무리 토론을 열심히 경험하여 논리, 경청, 합리를 깨우쳐도 현실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열쇠는 주로 중재자의 권위와 당사자의 감정, 상대와의 관계성이었습니다. 그걸 하루가 멀다 하고 겪게 되니 조금씩 지쳐갔습니다. 그리고 씁쓸하게도 이런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토론 수업이 과연 소용이 있을까? 그런 의문을 뒤집어 생각해 보려 이리저리 기억을 더듬어보니 문집에 남긴 한 아이의 일기가 떠올랐습니다.

 

2019924일 화요일

제목: 역시 나의 두뇌

...(앞 줄임) 우리 반에는 대걸레가 한 개밖에 없다. 그런데 쌤이 대걸레를 나랑 00한테 하라고 했다. 아무튼 어찌어찌하여 쌤이 나랑 00이랑 한 명은 그냥 걸레로 신발장을 닦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저랑 00이는 대걸레 당번이에요.”라고 말했다. 쌤은 대걸레가 한 개뿐이니 어쩔 수 없네요.” 같은 비슷한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래도 우린 대걸레 해야죠. 그냥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은 청소 안 하면 안 돼요?”라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쌤은 또 다른 대걸레가 망가진 것은 쌤 잘못이 아니네요.”라고 했다. 나는 할 말이 생각 안 나서 손이나 씻으려고 교실을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할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교실에 다시 들어와 말했다. “! 하지만 쌤은 대걸레가 한 개 망가진 것을 알고 계셨어요. 알고 있으면 저나 00 중 한 명을 다른 당번으로 하셨어야죠. 이건 선생님 실수네요.”라고 사이다(?)를 날렸다. 그러니 쌤이 할 말이 없네요.”라며 인정했다. 앗싸! 그래서 나는 오늘 대걸레를 반만 하고 00에게 대걸레를 넘겨주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협상하려는 자세, 상대의 반박에 어쩔 수 없이 인정하려는 순간 논리의 허점을 찾아 어른을 한 방 먹여 기분 좋았던 일이 담긴 일기입니다. 19년은 학급살이를 토론으로 풀어갔던 해입니다. 아이들끼리도, 저와도 관계도 꽤 좋았습니다. 그래서 토론이 수업뿐만 아니라 일상에도 물들어가는 게 가능했습니다. 22년에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교실 분위기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결국 분위기를 봐가면서 해야 한다는 결론. 그런데 눈치만 보지 말고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게 교사의 슬픈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쉽지 않네요.

 

교실 분위기는 아이들의 기질, 상성에 크게 좌우되겠지만 그런 주어진 상황만으로 바라보기엔 너무 운명론적입니다. 교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가르치는 게 무슨 소용일까요. 그래서 교사가 개입할 수 있는 그 틈새는 없는지, 그 틈새로 만들 수 있는 토론 문화는 어디까지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인정해 주는 분위기, 생각이 다름이 감정 다툼으로 번지지 않는 성숙한 태도, 토론 끝에 정해진 것을 따라주는 자세,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선생님들께서는 이런 교실 토론 문화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하우를 갖고 계실까요? 비록 글이라 어렵겠지만, 여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기회를 얻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에는 분위기를 봐가면서 하지 않고, 분위기를 만들면서 토론 수업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