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왜 여우 목도리 했어요?

2023. 12. 6. 23:56따뜻한 토론교육 겨울호(제5호)/토론 이야기

선생님, 왜 여우 목도리 했어요?

고양토론모임 최보영

11월 말이 되니 날이 추워져서 패딩 점퍼를 꺼내 입었습니다. 학교에 가니 우리 반 아이가 제 옷을 보고 이야기합니다.

선생님, 왜 여우 목도리 했어요? 우리한테 여우 목도리 책 읽어주셨잖아요.”

... 그렇네. 이게 여우 털인가?”

패딩 점퍼의 모자에 부드럽고 풍성한 흰색 털이 붙어 있었거든요. 깜짝 놀라 옷을 벗어서 안쪽 꼬리표를 보니! ‘배색 여우(폭스) 100%’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예전에 산 옷이라 몰랐어. 미안해.”

집에 돌아와서 다른 패딩 점퍼의 모자를 살펴보니 천연 모피(여우)’, ‘너구리 털 100%’였습니다. 참 부끄러웠어요. 그다음 날부터는 모자의 털을 뗀 패딩 점퍼를 입고 학교에 갑니다.

 

우리 반 아이들도 저도, 이렇게 여우 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9월 마지막 주부터 한 달 동안 동물에 관해 이야기하고 토론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동물도 행복할 권리가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동물권은 다루지 못했지만, 한 달 동안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와 활동을 남겨봅니다.

 

하나. 인간이 동물을 이용해도 될까요?

 

여러분은 어디에서 어떤 동물을 만나본 적이 있나요?”

우리 반 아이들이 만난 동물은 집에서 기르는 반려동물(, 고양이, 햄스터, 거북이 등), 길거리나 산, 도로, 공원 등에서 본 동물(, 개구리, 비둘기, 까치, 청설모, , 고양이 등),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 동물 카페에서 만난 동물, 농장이나 시골집에서 만난 동물(, , 돼지, 염소, 말 등), 그 외(시장에서 본 고등어, 횟집 수족관의 물고기 등)로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동물을 어떻게 이용하나요?”

동물에 대한 경험을 떠올린 후 그림책 <멋진 하루>(안신애 / 고래뱃속 / 2016)를 읽어주었어요. 이 책은 우리가 먹고, 입고, 즐기는 것들 뒤에 숨겨진 동물들의 고통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림책을 읽은 후 사람들은 동물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옷이나 소품(가방, 지갑, 장갑 등), 먹는 고기, 실험, 관람(동물원, 아쿠아리움, 서커스), 물건 재료(코끼리 상아, 누에고치, 깃털 등) 등으로 이용되는 동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들에게서 (동물을) 이용해야 해요?’, ‘다른 걸로도 만들 수 있잖아요.’와 같이 울분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아이들에게서 나온 사례를 정말 필요해서 꼭 이용해야 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나누는 중에 작은 토론이 이루어집니다. '고기는 먹어야지.’ ‘고기 말고 다른 걸 먹으면 되잖아.’ ‘고기가 맛있어. 너는 고기 안 먹어?’ ‘, 나는 고기 안 좋아해.’ 이렇게요.

 

사람들이 동물을 이용해도 될지 가치 수직선 토론을 해 봅시다.”

동물을 이용해도 된다.’ 10, ‘이용하면 안 된다.’ 6, ‘잘 모르겠다.’ 5명으로 이용해도 된다는 의견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쓴 글을 읽어보면 인간을 위해서는 동물을 이용해야 하지만, 동물을 학대하지 말고, 미안해하고,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이용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읽은 그림책

 

 

. 동물 복지 이야기

 

저는 음식 재료를 한살림에서 사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달걀은 꼭 한살림에서만 샀어요. 그런데! 얼마 전 <4번 달걀의 비밀>(하이진 / 북극곰 / 2023) 그림책을 읽은 후 냉장고의 달걀을 꺼내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1달걀일 줄 알았는데 ‘2달걀이었거든요.

‘4번 달걀의 비밀은 아이들과 농장 동물의 복지에 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너무 좋은 책이에요. 그전에 <탁탁, 톡톡, 음매~ 젖소가 편지를 쓴대요>(도닌 크로닌 글, 베시 루윈 그림 / 주니어RHK / 2022) 책을 읽고 토론을 했습니다. 이 책은 농장 동물들이 주인에게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농장 주인은 동물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할까요?”

찬성 측에서는 농장 주인이 동물을 가두어 놓고 생산물을 빼앗아 이익을 얻으니 기본적인 환경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대 측에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음식과 물을 주고 살 곳을 제공하고 있으니 그 이상의 요구는 들어주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어요. 농장에서 사는 것이 야생에서 사는 것보다 안전하기도 하고요.

 

토론한 후 공장식 축산, 농장 동물의 실태를 알려주었습니다. 검색해 보면 너무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이 많아서 저는 아이들에게 찾아보게 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조사한 자료를 정리해서 ppt로 보여줍니다.

농장 동물 대부분은 꼼짝달싹 못 하는 좁은 철창에 갇혀서 알이나 새끼를 낳고, 몸집을 불려 도축됩니다. 우리가 먹는 고기와 우유, 달걀은 이렇게 얻어지지요.

 

동물들이 정말로 말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할까요?”

동물들이 행복한 농장은 어떤 모습일까요?”

동물들이 자연에서 뛰어놀며 사는, 동물 복지 농장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동물들이 행복한 공간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동물 복지에 관한 작품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동물이 행복한 농장을 상상해서 꾸미거나 동물 복지를 실천하자는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에요. 알았으니 실천도 해보아야겠지요. 아이들과 인터넷으로 ‘1번 달걀을 파는 곳을 찾아서 1번 달걀로 만든 구운란을 주문해서 먹어 보았어요. ‘동물 복지 삼겹살도 구워주세요.’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었지만...

 

함께 읽은 그림책

 

 

. 이야기 더 나누기

 

날마다 동물 관련 그림책을 한 권씩 읽어주며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이들이 여러 가지 논제를 말합니다.

동물실험 해도 되나요?
개고기를 먹어도 되나요?
고기를 먹어도 되나요?
동물 안락사를 해도 되나요?
반려동물을 키워도 되나요?
반려동물 자격 제도가 필요한가요?
집 고양이와 야생 고양이 중 누가 더 행복할까요?
동물도 권리가 있나요?

토론을 더 하고 싶었지만 한 달 동안 동물 이야기를 하니 아이들이 이제 좀 지겨워요.’라고 하네요. 다루고 싶은 주제는 많지만, 더 욕심부리지 말아야 할 것 같았어요.

아이들이 말한 논제에 대해 두 시간 동안 난상토론으로 가볍게 토론하고 주장하는 글쓰기(수행평가)로 넘어갔습니다. 이야기 나누었던 주제 중 하나를 골라 글을 써보도록 했어요.

처음에 생각했던 동물도 행복할 권리가 있을까?’까지는 결국 못 가서, 관심 있는 선생님이 있으면 동물권 수업을 함께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함께 읽은 그림책

 

 

선생님, 왜 여우 목도리 했어요? 우리한테 여우 목도리 책 읽어주셨잖아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렇게 수업하고 난 후 제가 여우 목도리가 달린 패딩 점퍼를 입고 학교에 간 것이지요. 당황스러워서 말을 더듬고,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아직도 고기를 먹습니다. 달걀도 좋아합니다. 겨울에는 추워서 거위 털 패딩을 입어요. 하지만 고기를 덜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달걀은 1번이나 2번만 사고요. 우유 대신 귀리유를 먹은 지는 좀 됐어요. 지금 있는 패딩 점퍼는 오래오래 입고 낡아서 헤지면 착한 패딩 점퍼를 사려고 해요.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무겁고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