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22. 15:25ㆍ따뜻한 토론교육 여름호(제7호)/사는 이야기
군포토론모임 오중린
뮤지컬이 아니라 음악극
다른 건가. 공연을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나에게 음악극이라는 이름은 좀 낯설지만 반가웠다. 우리말이라 그렇다. 기타와 피아노가 오른쪽 구석에 놓여 있다. 내가 좋아하는 두 악기가 있으니 기대가 되었다. 배우 둘이 나오는데 처음부터 극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배우들이 스스로를 소개했다. 해설에서 노래, 극이 왔다 갔다 했다. 뮤직비디오처럼 어떤 장면을 노래로 표현했다. 뮤지컬은 대사를 노래로 하기도 하는데 이건 그렇지 않아서 뮤지컬과 달리 음악극이라 한 건가?
배우
첫 노래를 남자 배우 박정원 씨가 시작하는데 목소리가 참 좋다. 그러다 깜짝 놀랐는데 여자 배우 이현진 씨가 화음을 얹은 순간이었다. 주인공은 태일이니 태일에게 눈이 가있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둘이 같이 노래하고 움직일 때 내 눈이 내 바로 앞에 있는 박정원 씨가 아닌 저기 왼쪽 멀리 이현진 씨를 보고 있을 때 또 흠칫 놀랐다. 그만큼 매력이 철철 넘치는 분이었다. 이현진 씨는 여러 역할을 계속 바꾸어 가며 하는데 그때마다 목소리, 말투, 표정, 몸태가 어찌 그리 달라질까. 엄마 역할 할 때는 딱 엄마 같고, 어린 여공을 할 땐 딱 열다섯 살 같다. 태일을 설레게 했던 서울 아가씨 역할을 할 땐 나도 그 여인에게 설렜다. 같은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데 앞치마를 매면 엄마고, 덧소매를 끼면 여공이 되었다가, 안경을 끼면 근로 감시관이 되고, 길고 얇은 꽃무늬 치마를 입으니 서울 아가씨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좋은지. 매끈매끈하기도 또랑또랑하기도 하다. 동글동글 부드럽고, 힘도 있다.
무대 그리고 아쉬움
처음 의자에 앉아 무대를 볼 때 아무 느낌이 없었다. 아직 이 무대의 이야기를 보지 못했기에 ‘아, 저기가 공장인가 보다.’ 정도. ‘이야기가 아직 나에게 오지 못했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거겠지. 아무 느낌 없던 무대가 극이 끝난 뒤 나에게 무엇을 줄까?’ 설레는 마음으로 극을 보기 시작했고, 극이 끝난 뒤 나는 빨리 나가달라는 알림에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이제 저 무대가 나에게 느낌을 주었는데. 잠깐이나마 가만히 앉아 저기 마루 밑에 누운 엄마와 태일을 더 떠올리고 싶은데. 동생 같은 여공들을 돌봐주던 태일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고, 좌절하고 ‘그렇지만’ 다시 일어나던 그를 눈앞에 되살리고 싶은데. 나는 영화관에 잘 안 가지만 영화관에 가면 꼭 자막을 끝까지 다 보고 나온다. 눈은 자막을 따라가고 귀는 음악을 들으며 머릿속에서는 장면, 장면을 되새김질한다. 그 시간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어제 공연을 보고도 그런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극이 태일의 죽음과 함께 끝나서 더 그럴 수도 있겠다.
공연 이후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며 공연 이야기를 했다. 신기하게도 5학년인 이현이도 전태일을 알고 있었다. 남편이랑은 90년대에도 몸을 불사른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고, 뉴스에서 봤던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랑 통화하며 내가 몰랐던 6, 70년대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는 중학생 때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분위기가 기억난다고 했다.
나는 이번 선거 때 선거 공보물을 보고 김문수 씨가 노동운동을 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고 깜짝 놀랐는데 어떻게 지금처럼 변했는지 궁금해서 아빠의 생각을 물었다. 아빠는 끝에 있던 사람이 변하면 오히려 완전 반대쪽으로 가더라면서 그런 사람이 많다고 하셔서 참 놀랍고 아쉬웠다. ‘개인의 사상 변화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기회가 된다면 찾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빠랑 이야기하며 PD니 NL이니 하는 들어본 듯 익숙하지 않은 말도 듣고, ‘내가 현대사에 무지하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 글을 쓰며 찾아봐도 저게 뭔 말인지 잘 모르겠다.
어제 교사 집회가 있었다. 집회 알림 글을 보자마자 가야겠다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날이 어제인 것이다. 집회를 갔다가 공연을 보러 갈 수 있으려나 했는데 시간도 겹쳐버렸다. 다른 공연이었으면 좀 찔렸을 것 같다. 그래도 ‘태일’을 보러 간 건 좀 덜 찔려도 되지 않나 생각했다.
태일의 삶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잊혀간 건 사실일 거다. 다시 한번 그의 삶을 돌아보고, 그래서 내 삶과 내 가족의 삶, 우리나라의 지난 시간을 짚어보았다. 그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영향을 주겠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나의 무엇까지 내줄 수 있을까.
공연 알림을 보았을 때부터 참 놀라웠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싶어 여러 가지 번거로운 일을 마다하지 않고 착착 진행하는 련아샘을 보며 신기하고 고맙고 기분 좋았다. 일 잘하는 사람 보면 느껴지는 쾌감이랄까. 련아샘 덕분에 오랜만에 공연을 보았고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