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태일>을 관람하고 나서

2025. 6. 22. 15:34따뜻한 토론교육 여름호(제7호)/사는 이야기

군포토론모임 예유라

 

614일 토요일, 혜화 대학로에서 <음악극 태일>을 초등토론교육연구회 선생님들과 단체 관람했다. 생각 깊고 언니 같은 련아샘이 열어준 소중한 기회라 관람할 사람 모집할 때 얼른 신청했다. 사실 전태일에 관해 내가 아는 거라곤 평화시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싸우다 스스로 몸에 불을 지르고 돌아가신 분이라는 것뿐이었다. 마치 유관순의 업적은 3.1 만세운동을 이끈 것이고, 이순신의 업적은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것이라 알고 있는 것처럼 단편적인 지식이었다. 하지만 연극을 보며 전태일이라는 사람의 생애, 그가 평소 했던 생각, 그가 추구하는 가치 등을 알 수 있었다.

자기 처지는 나아졌을지 몰라도 옆에서 고통받는 어린 여공들, 그리고 전반적인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작년 우리 교사들이 생각났다. 서이초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여의도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우리 목소리를 들어달라 외쳤던 게 떠올라 연극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고용주와 노동청까지 결탁한 거라면 대체 어디까지 이 불합리함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고, 이 거대한 벽을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 것인가!” 좌절하는 태일 역의 대사가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2017년 영전강, 스강 사건 때 인터넷 댓글 창을 뒤덮었던 조롱 섞인 말들,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너네보다 수업 잘할 듯’, ‘철밥통. 대한민국의 교육은 미래가 없다고 체념하고 오스트리아로 도망치듯 떠났지만, 낯선 땅에서의 외로움과 차별을 못 견디고 돌아왔다. 초임 시절, 말도 안 되는 교육 정책들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매일 절망과 무력감에 빠져 울었다. 그 탈출구가 노조에서 일하는 거였는데 노조에 들어가니 교사가 어찌나 정치적으로 구원받을 수 없는 집단인지 뼈저리게 깨닫고 다시 저항의 최전선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러나 태일은 고뇌하고 무력감에 빠졌음에도 다시 용기를 내 처우 개선을 외쳤다. 그 울림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 인간 전태일의 끝없는 물음과 그가 흘린 땀이 절대 헛되지 않았구나. 학교에서 민주주의, 공정을 가르치는 나인데 아이들에게도 지쳐 쓰러지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는 선생님들과 나도 계속 목소리를 내야겠구나 다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