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는다. 어느 멋진 가을 나들이

2021. 12. 8. 17:37따뜻한 토론교육 가을호(제1호)/사는 이야기

 

고양토론모임 *은*



언제부터 걸었을까? 작년 가을 10월부터였던 것 같다. 그 전에 나에게 10월은 어떤 달이었나를 먼저 생각해보았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 누구나 가을이 되면 많이 듣고 많이 불러 보고, 특히 예전에 있던 학교에서 리코더, 하모니카 등 1인 1 악기로 많이 연주하던 곡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언제부턴가 10월은 극복하기 힘든 힘들었던 일을 떠오르게 하는 달이었다. 초임 시절에 힘들었던 일, 그리고 2년의 휴직 후 복직해서 힘들었던 일들이 기억에서는 희미해졌지만 몸이 기억하는 것 같다. 10월만 되면 불안해진다. 뭔가 아픈 일이 생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 같은 것이다. 
그리고 가을을 탄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기온이 떨어지고 날씨가 싸늘해지면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창가에 눈이 머물곤 한다. 10월엔 추수를 하듯 학교에서도 거두어들이고 실적을 보고해야 해서 한꺼번에 일이 많아지는 시기라서 몸도 힘든 데, 일에 집중은 안 되고 무언가 잘못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돌덩이처럼 가슴 속에서 늘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썼던 걷기 글들을 살펴보니 작년 10월 24일 글부터 걷기를 하고 나서 쓴 글이 있다. 

[가을 아침 남산 둘레길] 2020. 10. 24.

아침에 한라산을 가신다는 글을 보고 창밖을 보니 어딘가로 가고 싶어서 동네 친구 따라 남산을 다녀왔다. 오는 길에 남대문시장에 따라갔는데 가을가을 했다. 걷고 나서 먹는 것은 뭐든지 맛있어서 남산 아래 돈가스집에서 부추전을 2개나 먹었다. 얼마 만에 먹는 식당 밥인지. 바로 옆에 있는 커피가게로 들어갔다. 동네 친구 남편이 여기서 청혼을 했다는 옛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날 걸은 길은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이고 준비 없이 간 길이다. 조금 힘이 들었지만 올라가면서 본 경치와 위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 그리고 걸으면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따듯했다. 함께 걷다 보니 함께 걷는 친구의 옛이야기를 만났다.
가끔 답을 잘 모르는 일이 있으면 퇴근 후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조금 걷다 들어가곤 했지만, 이렇게 어딘가를 걸어야지 하고 걸어 본 건 이게 처음이지 않았을까? 그 후로 둘레를 걸어보았다. 둘레에 있는 내천을 따라 걷기도 하고, 가까운 뒷산을 걷기도 하고. 걷다 보면 다음 걷고 싶은 곳이 생긴다. 함께 걷기도 하고 혼자 걷기도 한다. 혼자 잘 못 걸었었는데 걷다 보면 자연이 벗이 되어주고 용기가 생겼다.
걸으면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 흘러가는 물소리, 계절 따라 변해가는 나뭇잎의 색깔, 이런 것들의 아름다움을 알아가기 시작한 것 같다. 그냥 걸었을 뿐인데 자연은 많은 것을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걷다 보니 이미 가을이 지나고 있다. 늘 힘들다고 움츠렸던 10월이 지나가고 11월도 지나가고 있다. 가끔은 시간이 많은 것을 흐르게 한다. 급하게 달려든다고 그 일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조급해하지 않고 어떻게 될지 기다리는 마음도 배우게 된다. 10월은 이제 두려움보다 설렘으로 다가온다. 또 어디를 걸을까 하는.

 


올해 1학년을 처음으로 만났다. 선생이 되어서 만난 처음 1학년이었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걸으면서 만난 소리, 빛깔, 본 것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함께 학교 둘레를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과 그동안 몰랐던 학교 둘레에 있는 꽃들의 이름도 알게 되고, 그 꽃이 지고 나서 어떤 열매가 열리는지도 눈으로 보았다. 열매를 함께 따서 먹어보기도 했다. 가끔 아이들이 학교에 오면서 열매를 따오기도 하고, 씨앗을 따서 가져오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가을 색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때, 미끄럼틀 아래에서 큰 느티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는 나에게 명진(가명)이가 놀이터 큰 미끄럼틀에 올라가 ‘선생님 여기 올라와 보세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타고 올라가는 줄을 잡고 올라가 보았다. '와!'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바로 여기다. 내가 찾던 곳이. 그동안 아이들과 가을 나들이하기에 좋은 나무 그늘을 찾고 있었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아이들과 돗자리를 가지고 다시 느티나무가 있는 미끄럼틀에 올라갔다. 돗자리를 깔고 3명씩, 4명씩 누웠다. 눈을 감고 바람의 소리,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어보았다. 그리고 눈을 뜨고 누워서 하늘을 보았다. 파란 하늘과 햇살에 반짝이며 흔들리는 나뭇잎 색깔이 고왔다. 교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수아(가명)는 그날 누워서 본 나뭇잎이 색깔이 제일 예뻤다고 했다.

지난 11월에 백악산(북악산-일본이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북악산의 옛 이름) 북쪽에 새로 열린 길을 따라 올라가 곡장과 숙정문(북대문)까지 가 보았다. 오를 때는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찼는데 뒤돌아보면 잘 올라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땀이 살짝 나는데 시원한 바람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단풍이 다 졌지만 성곽길을 따라 쌓여있는 단풍잎들이 참 곱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힘들면 잠시 나무 의자에 앉아 쉬어간다. 동네 친구랑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도 나눈다.

곡장에 올라 삼각산(북한산의 옛 이름)을 보니 삼각산 아래 학교에서 근무하던 10년 전 일들이 떠올랐다. 그해 참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또 어떤 길로 갔을까? 숙정문 앞에서 한양도성 성곽길을 보니, 아직 가지 못한 길을 다음에 가볼까 하는 설레는 마음이 생겼다.

새로운 길이었다. 새로운 길은 늘 두려웠다. 혼자 걷기도 두려웠다. 처음이기 때문에. 걷다 보면 또 다른 길로 걷다 보면 새로운 길이 주는 설렘, 또 기쁨이 있다. 걷다 보면 과거와도 만나고 또 현재의 나와도 만나고 다가올 일들에 대한 설렘도 생긴다. 그리고 계절의 여러 가지 빛깔을 담는다. 그리고 그 빛깔과 느낌을 함께 아이들과 나눈다. 그리고 또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