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들의 토론

2022. 5. 14. 22:14따뜻한 토론교육 봄호(제2호)/토론 이야기

병아리들의 토론

 

군포토론모임 장양선

 

올해 학교를 옮겼어요.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호수가 보이는 풍경, 1층 교실에서 문 열고 나가면 바로 보이는 잔디밭 등이 저를 그 학교로 이끌었죠. 첫 발령 학교에 뒤에 산이 크게 있었는데 산이 있어서 아이들과 좋았던 기억들이 참 많았어요. 자연과 가까이 있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내고 싶은 마음도 컸던 것 같아요.

 

새로운 학교에서 저는 3학년 아이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어요. 오랜만에 3학년 아이들과 함께 지낼 생각에 2월에 교육과정을 살피며 설레는 날을 보냈어요. 하지만 3월이 되어 막상 아이들을 만나니 제 생각과는 많이 다른 날들이 이어졌어요. 스물일곱 명의 아이들은 생각보다 아이들이 많았고, 아이들은 마치 다른 방향으로 튀는 탁구공 같았어요. 갑자기 날아오는 여러 개의 탁구공 앞에서 저는 당황해하는 날들이 많았어요.

 

2020년에 입학한 아이들은 3학년이 될 때까지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지 못한 아이들이에요. 코로나19로 입학도 계속 미뤄져서 거의 반소매를 입을 무렵에야 학교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있었지요. 아마도 입학식 때 준비했던 예쁜 옷 대신 다른 옷을 입었을 것에요. 옷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지요.

 

조금만 참으면 날마다 학교에 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조금만은 2년이라는 시간이 될 거라는 걸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지요. 어른들의 2년과 1학년 아이들의 2년은 매우 달라요. 1학년 때 하나씩 알아가야 할 것을 이 아이들은 배우지 못했어요. 많은 사람은 학습수준이 많이 낮아졌다고 하는데 저는 이 아이들이 누리지 못한 이 더 마음에 들어와요.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져 지내는 것 대신 집 안에서 혹은 마스크를 쓰며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며 지낸 아이들이 잃어버린 삶과 그 대가로 아이들이 배우지 못한 것들이 자꾸 내 눈에 들어왔어요.

 

아이들의 잃어버린 삶에 조금이라도 채워주고 싶은 제 고민은 계속되었고, 여러 방법 중에 답을 정해놓은 것처럼 토론이 떠올랐어요. 아이들과 지내며 이야깃거리로 떠오르는 장난감, 친구 등의 문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토론이라는 배를 타게 되었어요. 그리고 자연스레 토의로 넘어갔고 그렇게 정해진 교실 안의 규칙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더 잘 지키게 되었어요. 오히려 스스로 감시하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더 고민이 되는 날들도 있었지요. 아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반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생각을 다듬어가고 그 생각이 아이들의 삶을 이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과학 교과를 공부하는데 동물들의 한살이 단원이 나와서 그동안 생각만 했던 병아리 키우기를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아이들과 함께 동물을 함께 키우고 싶었던 마음이 가장 컸고 3학년이지만 아직 1학년같이 귀여운 우리 아이들과 병아리가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병아리들이 자라서 어미 닭이 되어가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어엿한 3학년처럼 쑥쑥 자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옆 반 선생님들께 말씀드렸더니 모두 재미있겠다고 찬성을 해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저는 아이들에게 물어봅니다.

 

얘들아, 우리 병아리 한 번 키워볼까요?”

! 정말요?”

 

라는 대부분 예상하는 반응과 더불어 예상 못 하는 반응들도 나와요. 역시 인생은 예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야 재미있는 거겠지요.

 

, 전 싫어요!”

전 반대예요. 반대!”

 

역시 우리 반 아이들답네요. 나의 의견은 확실하게 냅니다. 옛날 사람인 나는 가끔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얼마나 바람직한 모습인가요.

 

, 병아리를 키우는 게 어렵구나. 왜 그런지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냄새나요.”

똥도 우리가 치워야 하잖아요.”

우리 공부하는데 삐악삐악 소리가 나서 방해돼요.”

 

벌써 다양한 근거들이 나오고 있어요. 그리고 병아리 키우기에 환상만을 가지고 있던 저에게 생각하지 못했던 현실을 알려줍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쩌면 아이들이 덜 자란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자라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이들 나름으로 자라고 있었는데 내 생각과 다르다고 부족한 부분만 보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해서 시작된 병아리 토론! 아이들은 진심으로 찬성과 반대의 의견을 이야기합니다. 병아리를 키우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도 간절했지만, 키우기 싫은 아이들의 마음 또한 완강해 보입니다. 처음으로 해보는 일대일 토론이었지만 제 안내에 따라 토론 순서대로 정말 병아리처럼 하나씩 하나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토론을 하면서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이 이런 건가? 저는 또 혼자만의 착각하며 아이들 앞에서 헤헤 웃고 있습니다.

 

이제 병아리를 키울지 결정하는 토의를 하려고 합니다. 토론하면서 양쪽 근거를 모두 살펴보았으니 토의를 하면서 병아리 키울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잘 살펴볼 수 있겠지요? 토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저는 행복합니다. 토론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아이들의 모습 덕분이지요. 진짜 병아리를 키우던지 우리 교실에 있는 더 귀여운 병아리를 키우던지 어쨌든 올해 저는 병아리들과 잘 지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