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14. 22:24ㆍ따뜻한 토론교육 봄호(제2호)/토론 이야기
우리 아이 토론 첫 번째 만남 - 준비와 그날의 기록
대구토론모임 박영현
드디어 우리 아이 토론 모임을 시작합니다. 6년 전 이영근 선생님의 연수에서 우리 아이 토론이란 것을 접했을 때부터 마음에 담아두었습니다. 그때 제 아이가 유치원 다녔을 때니까 많이 묵혀뒀네요. 이제 6학년이 된 아들과 토론을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급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준비가 충분하지 않지만 시작합니다. 잘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나가면서 조금씩 배워야 합니다. 함께하는 가족들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마음에만 담아두었지 제가 우리 아이 토론 모임을 만들어서 시작할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때가 되었고 마음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나고, 길이 생겼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함께라서 가능했습니다. 도움 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또 한 번 확인합니다. (그래서 더욱 토론의 중요함과 필요성을 느낍니다) 진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는 안목을 길러주고 싶습니다. 내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으로 용기를 내 봅니다.
공지를 했지만 모집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몇 군데 모임에 안내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문의 전화가 한 통도 없었습니다. 토론이 중요하다고는 알고 있지만 토론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부담된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몇 관심 있으신 분들이 계셨지만 자녀 나이가 맞지 않았습니다. 5~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하니 하고 싶어도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초토연 대구모임 선생님 세 분의 자녀와, 작년 제자와 소개받은 친구 포함 총 5명의 아이가 해보겠다고 했고, 어머니들이 함께 걸음을 해주셨습니다. 이 사람들과 귀하게 만나고 싶습니다. 여유와 웃음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처음에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이영근 선생님께 자문을 구했습니다. 별것 아니라고 하셨지만 그동안의 노하우를 풀어주실 때는 그 자세함과 꼼꼼한 안내에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구나. 의욕만 앞서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멀리 바라보되 지금 순간 살뜰히 살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모임을 연다는 것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시간을 써야 하고 마음을 써야 합니다. 책임감도 필요합니다. 예상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가치 있고 해볼 만한 일이었고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가 이 모임을 통해 진짜로 원하는 게 뭐지? 이 모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고 나의 한계는 뭐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할까? 기왕 하는 거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욕심을 내려놓아야겠다 마음을 다잡습니다.
초토연 카페도 살펴보고 그동안 모아뒀던 토론 관련 책들도 다시 열어보았습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모이는 모임은 참여해본 적이 없어서 막막했습니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영현샘 걸음이 새 길입니다.”
첫 모임을 하기 전 영근샘이 해주신 말씀에 힘을 얻습니다.
2022.5.1. 새 길을 함께 열었습니다. 한 시간 전에 모임 장소에 아들과 함께 갔습니다. 간단한 음료와 과자도 준비했죠. 책상 위에는 이영근 선생님의 토론 공책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각자 이미지 프리즘 카드에서 첫 마음을 보여주는 사진을 두 장 뽑아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준비를 도와준 아들이 더 긴장했다는 걸 들었습니다. 든든하고 고마웠습니다. 긴장되고 떨리지만 설렘과 기대가 된다는 공통적인 마음입니다.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떨리는 마음들이 느껴지고 차분하게 자신들의 마음을 이야기는 모습에서 앞으로 토론 분위기도 짐작해 봅니다.
아이스브레이킹 활동으로 긴장했던 마음을 조금 열었습니다. 움직이는 게임을 하면서 서로 조심스럽게 탐색하고 알아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늘 모임의 기록은 승현이 어머님이 맡아주시기로 했습니다. 적극적으로 맡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각자 다른 색깔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아이와 어른이 모였습니다. 함께 토론하고자 합니다. 익숙하지 않습니다. 기대가 다를 수 있고 하나의 울타리가 필요합니다. 포스트잇에 우리 모임에 기대하는 것들을 모았습니다. 유목화했더니 다섯 가지로 묶였습니다. 존중, 즐거움, 편함, 자신감, 성장입니다. 이 기대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울타리(가이드라인)를 함께 의논했습니다.
1. 시간을 잘 지키기
2. 서로 의견을 존중하기
3. 이해하기,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평가, 판단, 충고, 조언하지 않기)
4. 실수를 인정하기(자신에게 너그러워지기)
5. 격려하기, 칭찬하기, 호응해주기
6. 적극적 참여하기
7. 열린 몸과 마음으로 참여하기
8. 토론 준비하기
9.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10. 생각나면 용기 있게 바로 말하기
우리 모두 함께 정하고 동의했습니다. 안전한 공간 안에서 서로 마음을 열고 참여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입니다.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며 모임에 연속 2회 빠지면 다음에는 간식을 돌리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서로 부담 없는 선에서 참여도 잘하도록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모임은 월 2회 첫째 주 셋째 주로 정했습니다. 연말까지 총 12번의 토론 날짜가 나왔습니다. 모여서 계속 공부만 할 수는 없으니 8월 모임에서는 온종일 놀고 토론은 시간 나면 하는 걸로 결정했습니다. 대구 근교에 적당한 곳에 놀러 가서 신나게 놀자고 했더니 진지하던 아이들의 표정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겨울에도 하루 놀자고 했습니다. 딱 크리스마스 날이 모임 날에 걸렸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그날은 모두 시간이 괜찮다고 했습니다. 우리끼리 파티하자고 했더니 모두 아까보다 더 활짝 웃습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노는 게 즐겁습니다. 놀 때는 가족이 모두 참여해도 되고 토론에도 아버지가 참여하셔도 좋다고 했습니다. 아직은 아빠가 참여하지 않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참여할 수 있다는 가정이 넷이 되었습니다. 좋은 영향이 가족들 안에서 더 전파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모임 누가기록을 어떻게 할까 궁리하던 중에 대구 교육청에 책 쓰기 작가로 등록해 둔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기왕 하는 거 책으로 쓰고 잘되면 책이 발간되고 안 돼도 pdf로 만들어 저장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내를 드렸더니 아이들도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어머니들도 좋아하셨습니다. 하지만 너무 부담스럽게 책을 발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싶지 않다는 한 어머니의 반대의견이 있었고 이런 반대 의견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첫 만남의 어려운 자리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용기를 가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책은 우리 아이 토론 모임 기록용으로만 활용하되 부담을 가지고 의무적으로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토론 공책에서 토론의 기본에 대해 쓰인 내용을 함께 읽고 나누었습니다. 진지하게 밑줄도 긋고, 질문과 대답을 하면서 간단하게 토론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공부했습니다. 추천 도서도 안내했습니다. ‘토론이 좋아요.’는 꼭 구입해서 읽도록 안내했습니다. 다음 시간부터 토론할 논제도 결정했습니다. 논제는 ‘단짝 친구는 필요하다.’입니다. 요즘 사춘기가 오면서 아이들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일 것 같습니다.
계획했던 한 시간 반이 훌쩍 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서로의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소감을 생각해보기 위해 적었던 종이를 예쁘게 토론 공책에 붙인 아이와 어머니의 사진은 감동이었습니다. 시작할 때 마음 나누기한 걸 메모하고 사진 찍어 나눠주신 어머님도 계셨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정성을 들인 이 모임이 잘 되길 바랍니다. 토론 안에서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을 키우길. 나도 많이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토론 수업을 하기 전에 기대되기도 했고 긴장되기도 했는데 캐릭터 맞추기, 가이드라인 세우기 등 다양한 활동들을 많이 해서 긴장이 풀렸다. 다음 수업이 기다려지고 앞으로가 기대된다. 다음 수업 때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감 있게 참여해야겠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갔다. 가이드라인 중 실수 인정과 응원하기는 꼭 지켜야겠다. 다음 만남이 기대된다. 이번 기회에 더 성장할 것 같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집중해서 그런지 시간이 빨리 지나간 것 같다. 5월 22일 기대된다. 토론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가족과 함께 공유하여 집에서도 토론을 자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자료 준비할 때 우리 즐겁게 해보자 파이팅!”
“엄마의 삶으로 아이들만 챙기며 지내왔는데 아이와 함께 특별한 기회로 토론 수업을 같이 할 수 있어서 설레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