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7. 15:30ㆍ따뜻한 토론교육 가을호(제1호)/토론 이야기
군포토론모임 유준희
논제: 난민을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난 아이들과 토론 수업을 자주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독서 토론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 이유로는 페이지 암기 대결로 변질되는 말꼬리 잡기, 독서와 토론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까닭은 이것이다. 치열하게 토론을 거쳤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 말놀이라는 것. 독서 토론을 하고 나면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공허함을 느끼곤 한다. 그뿐만 아니라 책 속 당사자가 아니기에 주장을 거리낌 없이 펼치기도 참 좋다. 그 주장에 따른 말과 행동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말에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
토론을 배우는 까닭은 내 생각을 반듯하게 세우고 상대 생각을 오롯이 소화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인데, 독서 토론에서는 무책임한 토론이 자주 관찰된다. 나와는 상관없는 논쟁이니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내가 직접 겪는 바둑보단, 훈수 두는 마음으로 토론을 대한다. 그런 토론은 거칠게 말하자면, 언어유희. 공리공담으로도 보일 정도다. 난 그런 토론을 아이들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 교실 살이에서 부딪치는 갈등을 주로 토론으로 풀어나간 까닭이기도 하다.
한편 요즘 도덕-사회 수업으로 지구촌 문제 해결을 주제로 프로젝트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중 지구촌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법을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월드 카페 기법을 활용하여 여러 아이들의 생각을 모아본 것이 이러했다.
‘음식을 기부하기,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종교-문화가 다르더라도 인정하기, 내 것을 못사는 사람에게 나누기’
아이들의 해결방법을 본 순간 평소 독서 토론에서 느낀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말, 나와 상관이 없기에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다가왔다. 난민수용이라는 판단의 무거움을 알게 하고 싶었다. 아직 초등학생일 뿐인데 너무 내가 야박한 걸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의 겉핥기식 생각에 경종(?)을 울려줄 토론을 준비하게 되었다. 앞서 살핀 지구촌 문제로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 여러분의 이웃이 된다고 해도 너희들은 이와 같은 생각을 똑같이 할 수 있을까?
논제는 ‘난민을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로 했다. 수업은 일반적인 절차로 진행했다. 논제분석을 하고, 입안문을 썼다. 이제 토론을 해야 하지만, 토론 전후 아이들의 생각 변화를 살피고 싶었다. 그래서 토론 전 가치 수직선과 토론 후 가치 수직선으로 생각의 변화 또는 변화하지 않은 까닭을 살폈다.
토론은 늘 평소와 같이 즐겁게 마쳤다. 토론 전 찬반이 비등했던 아이들은 토론 후 찬반 각각 양극단으로 움직이되, 대체로 반대쪽으로 넘어간 경향이 보였다. 이 토론을 마치고 아이들에게 국경없는 의사회 영상을 보여주었다. 우리 친구들이 토론으로 느낀 난민의 어려움을 위해 삶을 봉사하는 사람들. 그렇기에 그 어떤 영상보다 아이들이 몰입하여 본 듯하다.
아이들이 토론을 배웠다고 말만 앞서는 사람이 되지 않길 바라는 건 교사 누구라도 동의할 것이다. 토론으로 갈고 닦은 말과 생각이 행동으로 물들어가는 것. 언행일치를 바란다. 하지만 참 어려운 말이다. 머리부터 가슴까지의 거리가 가장 멀다지만, 난 그 두 가지보다 손까지의 거리가 더 멀어 보인다. 귀찮아서, 시선이 두려워서, 오해를 받을까 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등등 내 행동과 삶은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더더욱 토론에서 나뉘는 생각들이 가벼운 것이 아니며, 책임을 질 수 있는 무거움을 아는 수업이었으면 한다. 이 수업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