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19. 21:47ㆍ따뜻한 토론교육 가을호(제3호)/사는 이야기
고기 줄이기
고양토론모임 한재경
1. 입맛은 제각각
공부 모임에서 삶 나누기를 했다. 내가 고기를 좋아한다고 하니 노근이가 내게 "너 고기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내가 "나 고기 많이 좋아해." 하니 노근이가 "난 네가 사람들 배려하느라 고기가 싫어도 먹는 줄 알았지." 옆에 있던 혜림 선생님도 "재경 선생님 평소 이미지가 과일이나 채소 좋아할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난 고기 먹는 걸 좋아한다. 고기가 맛있다.
어릴 적에 할머니가 내게 천도복숭아를 건네신 일이 기억난다. 할머니 입에는 고게 참 맛있었는지 "재경아 맛있어."하며 내게 하나를 주셨다. 할머니가 맛있다길래 예의상 받았다. 한 입을 물고는 얼굴이 찌그러졌다. 내 입에는 식초와 비슷했다. 또 어머니가 "이 귤은 달아. 먹어 봐." 하며 준 귤은 내 입에는 달지 않았다. "키위가 맛있어." 맛있지 않았다.
나는 과일은 누가 먹으라 하지 않으면 한 해에 하나도 안 먹고도 살았다. 고기는 가만 놔두면 아침부터 LA갈비를 구워서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어제저녁에 치킨을 먹고도, 오늘 저녁에도 치킨을 먹고, 내일 저녁에도 치킨을 시킬 수 있다.
한편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 내가 직접 만났던 많은 개와 고양이, 갈치와 고등어, 두꺼비와 낙지를 좋아했다. 나는 그들과 만나면 눈을 오래도록 맞췄고, 그들이 눈으로 내게 말한다고 느꼈다. 차에 치여 길에 죽어 있는 큰 고라니를 길 밖으로 옮겨서 간단한 장례를 치러주고 죽음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동물을 좋아하면서 고기를, 그것도 공장식 축산으로 만들어진 고기를 즐겨 먹었다. 마음먹은 대로 살지 않으면, 산 대로 마음먹어진다고. 나는 내 가슴과 혀 사이의 모순에 깊이 적응해 버렸다. 돼지와 소와 닭을 좋아하면서도 끔찍한 학대를 받으며 자란 돼지시체토막구이(삼겹살)와 소시체토막탕(갈비탕), 닭시체토막튀김(치킨)을 좋아했다.
2. 고기 줄이기
2013년엔 회천초등학교에서 6학년 4반 담임을 했다. 반 아이들과 '공장식 축산'으로 수업을 했다. 아이들 앞에 서니 내가 가진 모순이 부끄러웠다. 모순을 줄이고 싶었다. 고기를 줄여보기로 했다.
말은 쉽지만 삶은 어려웠다.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내 입맛. 내 혀는 여전히 살살 녹는 고기를 좋아했다. 또 하나는 배려. 내가 고기를 줄이더라도 나와 만나서 같이 밥 먹는 고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는 싫었다. 그리하여 나는 적당히 타협하여 '내 돈 주고 고기 사 먹지 말되, 누가 사주면 먹자.'는 고기 줄이는 나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그렇게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세 해를 고기를 덜 먹으며 살았다. 내 돈 주고는 고기를 사 먹지 않았다. 물론 동무들과 만나 닭튀김 먹으러 갈 때는 내 혀가 아주 즐거웠다. 하지만 2016년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고 난 다시 거의 날마다 고기를 먹게 됐다. 2018년부터는 다시 혼자 살았지만 고기 줄이기 운동은 이미 내 마음에서 사그라들었기에 고기를 잘도 맛있게 자주 먹었다.
3. 가슴에서 혀까지
2022년 9월 고양 글쓰기 공부 모임 때였다. 삶을 나누다가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과 고기 먹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야기는 ‘동물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에서 ‘우리도 고기를 줄여보자.’는 데까지 나아갔다. 다음 모임 때 오랜만에 얼굴 보고 모이기로 했는데 고기 없는 밥집에서 밥을 먹자고도 했다. 그 이야기를 나누며 몇 해 동안 꺼져있던 불씨가 다시 살아날려는지 조금 움찔거렸다. ‘이참에 나도 다시 고기를 줄여볼까?’
그 뒤로 두 달 (겨우 두 달이지만) 내 돈 주고 치킨을 안 사 먹고 있다. 물론 학교 급식 먹을 때는 고기를 받아먹는다. 식구들이 모일 때면 식구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종류별로 사서 아주 정성껏 맛있게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서 먹었다. 오랜만에 동무를 만나 동무가 닭튀김 먹자고 하면 난 아마 들떠서 갈지 모른다. 겨우 두 달, 나 혼자서 내 돈 주고 고기를 사 먹지 않고 있다. 이렇게 글까지 써서 나누게 되었으니 민망해서라도 조금 더 애쓰지 않을까?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가는 길도 참 멀지만, 가슴에서 혓바닥까지 올라가는 길도 가깝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