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다운제 토론 이야기

2021. 12. 7. 20:42따뜻한 토론교육 가을호(제1호)/토론 이야기

 

고양토론모임 최보영

 

6월 어느 날, 원격 수업을 위해 줌에서 아이들과 만나 '어제 뭐 했어?'로 아침 인사를 시작했습니다.

 

'어제 마크하는데요'

'? 마크하면 안 되잖아.'

'맞아, 그거 청소년 이용 불가야.'

'나는 돈 주고 사서 하는 거라 괜찮아.'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매일같이 온라인 학급 소통방에 게임 사진을 올리는 한 아이의 말에 몇몇 친구들이 갑자기 마인크래프트를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 그게 무슨 말이야? 마인크래프트가 청소년 이용 불가라고?'

 

게임은 잘 모르지만, 마인크래프트는 학교 방과 후 수업도 개설되는 게임으로 알고 있는데 청소년 이용 불가가 되었다니 의아해서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 앞으로 마인크래프트 하면 안 된대요. 청소년 이용 불가래요.'

'여가부에서 못 하게 했대요.'

'그건 아니야. 셧다운제 때문에 마크 회사에서 우리나라만 어쩌고저쩌고 했다는데...'

 

우리 반에서 셧다운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몇몇 아이들이 흥분해서 토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체육 수업 이외에는 매사 시큰둥하던 이 아이들이 수업 중에 이렇게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 보았어요.

 

11, 국어 토론 수업에서 논제를 찾던 중 '선생님, 셧다운제로 토론해요.' 이야기가 다시 나와서 다음 국어 시간에 토론해보기로 했습니다.

 

 

1. 논제분석

 

(1) 여러분이 지금 하는 게임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게임을 하나요?'

'그걸 다 말해요?'

'그렇게 많아요?'

'!!!!'

‘LOL, 로블록스, 배틀그라운드, 오버워치, 스타크래프트, 카트라이더, 피파, 클래시 로얄, 쿠키런, 마인 크래프트

'그걸 다 해?'

'해요!!!'

'그렇구나' 줄임말로 이야기해서 못 알아듣는 게임도 많았습니다.

'아크? 아크가 뭔데?'

'@#%^#'

'그래모르겠다. 빼자.' 선생님이 게임 이름 모르는 것을 재미있어해 주어서 다행이었습니다.

 

(2) 관련 경험을 이야기해 볼까요?

 

셧다운제 관련 경험을 이야기해 주세요.’

'롤을 하는데 열 시 반까지 밖에 못 해요.'

'저는 롤을 해도 오빠 계정으로 해서 상관없어요. 그런데 같이하는 친구가 열 시 반 이후에는 같이 못 하니 문제예요.'

'피파는 12시까지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게임을 일찍 시작해요.'

'저는 로블 하는데 시간제한이 없어요.'

'카트라이더도 12시 넘으면 못해요.'

'배틀그라운드는 1130분까지 할 수 있어요.'

'마인크래프트는 구매 제한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만 19세 넘어야 살 수 있대요.'

 

줌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지금까지 마이크가 안 되는 줄 알았던 아이들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아이들이었나 봅니다.

 

(3) 셧다운제는 무엇인가요?

 

'만 16세까지 밤 12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게임을 하지 못 하게 제한하는 제도예요.'
'그런데 게임마다 달라요. 열 시 반도 있고 셧다운제 없는 게임도 있어요.'
'PC게임만 해당돼요. 그래서 PC로 못하면 휴대폰으로 게임을 해요.'

 

(4) 찬성과 반대 근거를 만들어 봅시다.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게임을 못하게 하는 '강제적 셧다운제'가 필요한가요?'

*부모님이 게임 시간을 관리하는 선택적 셧다운제와 구분해서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찬성(필요하다.) 반대(필요 없다.)
-청소년은 자기조절능력이 부족하다.
-어린이(청소년)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새벽까지 게임을 하면 성장에 방해가 된다.
-다음 날 공부하는 데 문제가 된다.
-게임에 중독될 수 있다.
-청소년의 게임 중독이 심각하다.
-셧다운제는 거의 효과가 없다.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
-청소년에게도 행복추구권이 있다.
-지나친 규제이다.
-법을 만들지 않아도 부모님이 관리하면 된다.
-유튜브, 휴대폰 게임, 웹툰 등 놀 거리가 많은데 게임만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동안 많이 찾아보았나 봅니다. '자기 결정권, 자기조절능력' 등 어려운 말이 아이들 입에서 술술 나왔습니다.

 

2. 토론하기

 

토론은 전체토론으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선생님, 그럼 찬성, 반대 선택 못 해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이번에는 하고 싶은 입장에서 토론하면 안 돼요?' '저는 꼭 반대로 가고 싶어요.'

'저는 게임 안 해서 아무 데나 가도 상관없어요.' '저도요. 사람 수 적은 쪽으로 갈게요.'

일 년 동안 꾸준히 토론을 진행하니 이런 반응이 나오네요. 늘 양쪽 입장을 모두 준비하고 모두 경험하게 했더니 어느 쪽이어도 괜찮다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셧다운제에 대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아이들은 꼭 반대로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찬성과 반대 모두 준비하고, 토론할 때는 여러분이 선택하고 싶은 입장에서 토론해 봐요. 중립인 친구들은 선생님이 역할을 정해줄게요.'

 

드디어 토론하는 날, 공책에 빽빽이 글을 써와서 자랑합니다. 출력물을 준비해온 아이도, 주말에 친구들과 자료 준비를 하러 도서관에서 만났다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책상을 마주 보게 돌리고 찬성, 반대 수를 세어보니 꼭 반대 측에 앉고 싶은 아이가 15, 31명 중 절반이라 나머지 아이들은 다 찬성 측에 앉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토론하면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청소년의 자기조절 능력
찬성 반대
청소년은 자기조절능력이 부족합니다. (근거 생략)  
  그러면 어린아이들 뿐 아니라 6학년, 중학생도 자기 조절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인가요?
. 질문하신 분은 자기조절능력이 있어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을 잘 받고 있나요?  
  성적이 안 나오는 이유는 단지 게임만 해서가 아니라 친구들이랑 놀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지금 게임으로 인하여 성적이 낮게 나온다는 것이 아니고 자기조절능력이 부족해서 성적이 낮게 나온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게임은 스스로 조절하거나 부모님이 조절하면 된다.

찬성 반대
  게임은 스스로 조절하거나 부모님이 조절하면 됩니다. 법으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게임을 끌려고 하는데도 못 끈 경험이 있습니다. 스스로 조절하려고 해도 자기조절능력이 부족해서 잘 안 됩니다. 그래서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 제재를 받았다면 게임 중독이 있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와 노력입니다. 무조건 막는 것은 과잉보호로 이어져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듭니다.

 

-청소년의 성장

찬성 반대
열 시에서 열두 시 사이에 성장호르몬이 나오는데 이 시간에 잠을 자지 않으면 성장에 방해가 됩니다.  
  청소년의 성장이 중요하다면 게임만 규제할 것이 아니라 중독을 일으키는 공부, 휴대폰, 유튜브, 웹툰 등 다른 것도 규제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공부로 인해 수면시간을 빼앗기는 것과 게임을 하면서 수면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다릅니다.  
게임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유튜브를 통해서는 여러 가지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질문하신 분은 유튜브로 수학 강의를 찾아보시나요, 방탄 영상을 더 많이 보시나요?
수학 영상도 봅니다.
(다른 학생들에게서 '과연 그럴까요? 증거를 보여주세요. 목록에 방탄 영상밖에 없어요.' 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게임도 공부가 됩니다. 코딩이라는 장르가 새롭게 들어왔습니다. 게임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고 있고, 코딩하는 게임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

찬성 반대
  게임을 해서 성장에 방해가 되건, 머리가 나빠지건 개인의 자유입니다
나라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청소년은 미래에 우리나라를 이끌어야 합니다.  
  키가 작아도, 공부를 못해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어요.
고령화 사회인데 청소년이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게임을 개발하거나 프로 게이머가 될 수도 있잖아요.

 

중간에 유튜브와 웹툰의 교육적 효과를 따지거나 프로 게이머 직업에 대해 평가하는 등 토론이 산으로 가기도 했지만,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게임만 규제할 것이 아니라 중독을 일으키는 공부, 휴대폰, 유튜브, 웹툰 등 다른 것도 규제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게임을 해서 성장에 방해가 되건, 머리가 나빠지건 개인의 자유입니다.'와 같이 어른도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의미 있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습니다.

 

'질문하시는 분은 자기조절능력이 있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을 잘 받고 있나요?'나 '유튜브로 수학 강의를 찾아보시나요, 방탄 영상을 더 많이 보시나요?'와 같이 허를 찌르는 질문을 해서 모두가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토론을 마친 후,

아이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서로 모입니다.

', 찬성 있잖아~.' '아까 네가 말한 건~.' 토론의 열기가 가시지 않아 못다 한 토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왜 이렇게 긴장이 되냐.' '선생님, 애들이 왜 이렇게 잘해요?' 제 주변에 모여 하소연하는 아이들이 참 예쁩니다.

저는 토론을 참 좋아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토론을 아이들도 좋아하고 열심히 해줘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3. 토론 후기

 

'셧다운제는 있어야 한다. 셧다운제가 있어야 게임 중독을 막을 수 있다.'

'... 무섭고 다들 잘한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더 자세히 조사해야지. 건강을 위해 셧다운제는 필요한 것 같다.'

'셧운제가 필요한  것 같은데 막으려면 공부 등 모든 것을 막아야 할 것 같다.'

 

'친구들이 토론 준비를 정말 열심히 해서 존경스러웠다. 게임이 막혀도 유튜브 같은 것을 보니까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다.'

'너무 복잡하고 토론은 힘들다. 셧다운제는 없어져야 한다. 어차피 컴퓨터로 게임 안 하면 핸드폰으로 하는데...'

'토론이 너무 재미있다. 셧다운제는 반대이다. 자유인데 왜 강제하는지 모르겠다.'

 

'토론은 피이이이이곤하다. 어차피 셧다운제 폐지인데 왜 토론했는지 모르겠다.'

 

202211일부터 게임 셧다운제가 폐지됩니다.
16세 미만 청소년은 자정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온라인 게임에 접속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강제적 셧다운제'가 폐지되고 가정 내에서 자율적으로 게임 이용 시간을 정하는 '게임시간 선택제'가 적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