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10. 11:13ㆍ따뜻한 토론교육 여름호(제6호)/교실 이야기
체험학습을 못 가는 아이들이 불쌍하니 체험학습은 가야 하는가?
군포토론모임 오중린
언니(이웃인 초등학교 교사)랑 얘기하다 체험학습 이야기가 나왔다. 언니랑 얘기하면 뭔가 다른 시각으로 봐서인지 좀 더 내 의견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도 너무 헷갈리는 내 생각들이. 하긴 이건 누구와 이야기하든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공감하면서도 자기 생각을 얘기해주는 사람과 할 수 있는 대화인 것 같다.
내가 “우리 학교 애들은 불쌍하다. 버스를 세울 곳이 없어 체험학습을 못 간다.”라고 말했다. 우리 학교는 운동장에 새 건물을 짓고 있고 학교에 올라오는 길이 양쪽으로 일 차선씩 있어서 버스를 세울 곳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체험학습을 못 간다고. 운동장이 없어 건물과 건물 사이, 건물 옆 내리막길, 학교 구석구석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라도 노는 아이들을 보며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짠하다.
언니는 “체험학습을 못 가서 불쌍하다고 한다면 지금 안 가는 학교들이 많은데 그 아이들이 다 불쌍해지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언니는 지난해 9.4 때 어떤 교사가 “아이들이 있는데 교사가 학교에 안 오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언니는 ‘교사는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체험학습을 가야 한다.’는 생각을 경계한 것이다.
내가 우리 학교 애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한 건 첫째, 운동장이 없어 평소에도 실컷 못 노는데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체험학습까지 못 가기 때문이다. 둘째는 체험학습이 아이들에게 큰 배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평소에 체험학습을 가면 초긴장을 해서 집에 오면 쓰러지기 바쁜 사람이다. 워낙 겁이 많고 미리 걱정하는 성격이라 그렇다. 그래서 체험학습이 안 반갑다. 그런데 막상 못 간다고 하니 체험학습을 왜 가야 하는지, 왜 필요한지가 떠올랐다. 지난해 1학기에 5학년 아이들과 비무장지대 체험학습을 간 것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우리 국토를 배우며 비무장지대가 나오는데 사실 비무장지대에 가볼 기회가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에 오면 거의 필수 코스로 간다는데. 아이들은 우리나라 분단의 역사를 배우며 전쟁과 평화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되었던 것 같다. 도라 전망대에서 북한을 바라보았다. 낯설고 적대적인 북한이 조금은 가까워진, 그래서 더 슬펐던 경험이었다. 아이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았다.
몇 해 전, 5학년 2학기에 역사를 배울 때 국립중앙박물관 간 것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가서도 집중 안 하고 장난치기 바쁜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사진으로만 본 것들을 실제로 볼 수 있어 신기해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 다들 집에서 여행을 많이 다니고 한다지만,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럴까. 놀이공원은 많이 가도 박물관에는 한 번도 안 가본 아이들도 많다.
운동장이 있고 교사들이 보호받지 못해서 안 가기로 한 학교 아이들은...흠...그 학교 학생들도 불쌍하지. 그전 아이들은 다 갔으니까. 교육시스템 때문에 못 가는 거니까. 하지만 아이들이 불쌍한 건 불쌍한 거고, 안 가야 하는 건 안 가야 하는 거다. 원칙적으로는 체험학습 가는 게 필요하지만, 체험학습을 가는 주체가 보호받지 못하고 안전하지 않다면 당연히 안 가는 게 맞다. 아이들이 불쌍해서 가야 하는 건 아닌 거다.
나는 우리의 목표가 ‘체험 학습 안 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안전하게 체험학습을 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한 방법으로 현재 체험학습을 안 가기로 한 교육공동체에 지지를 보낸다.
앞으로 우리는 ‘모두가 안전하게 체험학습을 가는 것’에 대해서 자꾸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하면
1. 체험학습을 꼭 가야 하는 것인지도 이야기하게 될 것이고.
이에 대해서도 의견이 다들 다를 것이다.
2. 체험학습을 안전하게 가기 위해 교사가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학부모와 교육부, 교육청과 말이다.
안 가기로 결정한 학교들은 학부모, 학생, 교사가 어떻게 소통했는지 궁금하다. 그 결과로 안내문은 어떻게 내보냈는지도.
갑자기 예전에 읽었던 글이 생각나 찾아보았다. 독일에 사는 분의 2017년 글인데 초등학교 3학년이 4박 5일로 수학여행을 가는 것이다. 1년 전부터 학부모들이 모여 수학여행 장소와 비용 등 자세한 내용을 협의하고 돈도 모은다고 한다. 법적으로 교사가 어떻게 보호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수학여행에 필요한 상세한 논의에 학부모들도 참여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렇게 함께 준비한 체험학습이라면 만일 사고가 나더라도 교사에게만 책임 지우려는 마음이 좀 덜하지 않을까도 싶다. (2024.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