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칠순 잔치

2021. 12. 7. 23:42따뜻한 토론교육 가을호(제1호)/사는 이야기

 

고양토론모임 한재경

 

올해 가을 아버지가 칠순을 맞게 되었다. 어릴적에 했던 할머니 환갑 잔치가 기억이 났다. 시대는 많이 달라져 환갑이나 칠순을 굳이 잔치로 열지 않게 되었고 2021년은 코로나가 여전히 활개를 치면서 사람들을 모이지 못하게 막았다. 아버지 칠순은 조졸하게 작은집 식구와 모여서 밥 먹고 케이크를 자르게 될 터였다. 미국에 사는 누나는 이번에도 못 오겠지.

 

나는 지난 해에 구름방()을 지겹도록 했다. 학교에서는 구름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공부 모임에서는 구름방에서 공부도 하고, 심지어 이틀에 걸쳐 배움터도 했다. 띠리리링 기타부(2019년에 기타를 가르쳤던 아이들, 지금은 중학생) 아이들과 구름방에서 기타를 가르치고, 구름방에서 공연도 열었다. 마음모임(2016년에 가르친 아이들, 지금은 고등학생) 아이들과는 삶 나눔을 길게 했다.

 

내 나이가 마흔에 가까워지는 사이, 건강했던 아버지는 병을 얻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쪼그라든다. '아버지 생일 잔치를 열어야겠다. 한 사람이 여기 있다는 것을 식구들 앞에서 보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 지지 않을까?'

 

먼저 아버지 어머니 의견을 여쭸다. 두 분 다 좋다고 하셨다. 미국에 있는 누나에게 연락했다. 좋다고 했다. 그리고는 친가 외가 식구들에게 알려야 했다. 나는 초등학교 선생을 하며 구름방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안다. 그리고 그 대처 방법도 꽤 잘 안다. 친가 외가 어르신들이 '구름방 칠순잔치'라는 말을 듣고 느낄 문화충격과 줌이란 낯선 프로그램으로 들어올 때 겪을 어려움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답게 친절하게 안내를 해야겠다.

 

<원격 한원열님 칠순 잔치>

올 해 가을 아버지께서 칠순을 맞아요. 작은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아버지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식구들이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원격으로 합니다.

-: 103(일요일) 저녁 7~8

-방법: 원격 화상 회의 프로그램 (ZOOM)으로 만나기

-줌주소와 암호

-행사 차례

1) 사는 이야기 나누기 (참석자 돌아가며 1분씩)

2) 한원열님이 살아온 이야기 (글과 사진)

3) 참석자들이 한원열님에 대한 좋은 기억 한 가지씩 말하기 (참석자마다 3분 안팎)

4) 축하공연

5) 케잌 촛불 불기

-그밖에 : 줌 설치가 어려우시면 제게 연락 주세요.

-준비물: 한원열님에 대한 좋거나 고마운 기억 한 가지 떠올리기 (작디 작은 이야기도 좋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주연님도 참석하기로 했답니다. 생생한 얼굴을 볼 기회입니다.

-줌 설치 바로가기

-설치하고 들어오는 게 조금 복잡합니다. 근데 한 번 하면 그 다음부터는 괜찮아요. 그리고 이런 건 자식들이 잘해요. ㅎㅎ

 

공부 모임에서 배움터를 열듯, 칠순잔치를 준비했다. 잔치 하루 전 토요일에는 처음 하는 식구들을 위해 아침과 저녁으로 두 차례 줌 접속 실습시간도 마련했다.

 

잔칫날이 되었다. 작은집 식구들과 이른 저녁을 맛있게 해 먹고, 식 시작 30분 전인 6시 반에 미리 구름방을 열었다. 스무 사람 가까이 들어왔다. '와 이 정도면 넘칠 정도로 많다. 다행이다.' 잔칫날엔 노래가 없으면 허전하다. "한원열님 칠순을 축하하고자 가수를 모셨습니다. 가수를 소개합니다. 한 재 경" 내가 나를 소개했다. 나는 어릴 적 아버지가 자주 부르셨던 노래를 연습해왔다.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불렀다.

 

식전 공연을 마치고 첫 꼭지로 '삶나눔' 했다. (맞다! 바로 그 삶 나눔. 공부하러 모여 놓고는 모임 시간의 절반 가까이를 이거 하느라 보내는 그 삶 나눔! 나는 삶나눔 매니아다.) 친가와 외가 식구가 섞여있어서 자칫 어색할 수도 있으니 부담되면 '통과'를 하게 했다.

 

다음 꼭지로 '글로 보는 한원열님 살아온 이야기'. 두 주 전 아버지께 숙제를 드렸다. "아버지 살아온 이야기를 종이 1장에 써주세요." 아버지가 써 주셨고 읽는 건 나보고 하라고 하셨다. 나는 최선을 다해 재밌게 열심히 멋지게 읽었다.

 

이어서 '사진으로 보는 한원열님 살아온 이야기'. 아버지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사진 가운데 다섯장을 골라서 PPT에 넣었다. 그 사진을 한 장 한 장 띄우고는 얽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묻고 아버지가 답했다. 사진에는 이미 죽어 세상에 없는 식구들도 있어서 그이들을 추억하는 이야기도 오갔다. 병으로 몸이 딱딱하게 굳은 아버지가 이 꼭지를 하며 얼굴도 조금 풀리고 마음도 더 말랑해지는 것 같았다.

 

다음 꼭지로 '식구들이, 한원열님에 대한 좋은 기억 나누기'를 했다. '짧게는 서른해를 길게는 일흔해를 식구로 살아온 사이들인데 좋은 기억이 있겠지. 그걸 혼자만 간직해선 무슨 소용이야. 나눠야 소용이지.'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먼저 누나를 불렀다. "누나 먼저 나눠주세요."

 

누나는 미국에 산지 십년이 넘었다. 그 사이에 한국에 한 번도 오지 못했다. 누나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만 '글로 썼는데 읽어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당연히 된다' 말해줬다. 누나는 종이를 주섬 주섬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누나는 지금 가장 후회되는 건, 한국에 있을 때, 아버지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던 것이라고. 아버지가 표현은 서툴지만 그것이 아버지로서의 사랑이었다는 걸 두 아이를 키우면서 깨닫게 되었다고.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가 옆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건강해야 언제든 한국에 가게되면 아버지와 잘 지내볼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꼭 건강하시라고 말했다.

 

누나는 말하다 울다 말하다 울다 말했다. 건너 방에서 줌에 접속한 화면 속 어머니도 눈물을 훔쳤다. 누나에 이어 다른 식구들도 말했다. 막내 외숙모는 아무도 모르던 아버지의 선행을 이야기 해줬다. 그리고 식구들 안에서 자신은 아버지를 가장 존경해 왔다고 이야기를 했다. 다른 식구들도 다 있는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신 외숙모의 솔직함에 놀라기도 하고, 여러 사람의 존경을 받는 막내 외숙모가 우리 아버지를 꾸준히 존경해 왔다는 것 자체도 놀라웠다. (대단히 가부장적인 우리 아버지는 식구들 사이에서 따뜻한 사랑을 받아오지 못했기에) 최고령 참석자인 외할머니는 아흔다섯살 먹은 자기 보다 더 힘이 없어 보이는 큰 사위의 굽은 어깨를 보며 우렁찬 목소리로 '나도 사는데 자네가 왜 그래. 어깨 펴'라고 소리를 치셨다. 여러 식구들이 한 마음으로 아버지가 건강하기를, 행복하기를, 오래 살기를 빌었다. 진행을 위해 아버지와 딱 붙어 있던 나는 아버지의 심장에서 열이 난다고 느꼈다. 아버지 얼굴은 소주 세 병을 마신 사람처럼 빨개졌다.

 

다음으로 계획한 꼭지는 '한원열님이 식구들에게'였다. 그러나 이 꼭지는 행사 직전 아버지가 하지 말자고 하셨다. 아버지는 할 말이 없었던 거겠지. 그런데 앞선 꼭지를 마치려 할 때 아버지가 말했다. "가족들이 이렇게 이야기 해주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어머니를 비롯해 여러 식구들이 제 생일에 오셔서 저를 걱정하시고 응원해 주시니 제가 반드시 건강 관리 잘 하겠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아야 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말이 없던 아버지가 할 말이 생겼다.

 

다음 꼭지는 '축하공연'이다. 식전 공연을 했지만 본 공연이 남아있는 것이다. 식구들은 이 짧은 행사에 또 노래를 부른다는 말에 웃었다. 본 공연은 우리 어머니의 몫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요새 지겹도록 부르는 '울고 넘는 박달재'를 부르셨다. 나는 어머니 노래에 맞게 기타로 반주했다. 그 사이에 사촌동생 결이는 방에서 나와 케잌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다음 꼭지는 '촛불 불며 소원 빌기'. 몇해 전부터 아버지는 입 바람이 약해져서 촛불을 잘 못 끈다. 사촌동생이 들고 온 케잌을 카메라 앞에 들고, 식구들과 함께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가 활짝 웃으며 바람을 불었다. 촛불이 모두 꺼졌다.

 

이제 잔치를 닫을 때다. 나는 문을 열고 닫는 사람으로서 한 마디를 보탰다. '이전에 아버지 생일 잔치 하면 맛있는 거 해먹고는 케잌 촛불 불잖아요? 그러면 아버지는 방에 가서 혼자 바둑 테레비 보셨거든요. 그것보다 식구들이 이렇게 아버지 한 사람에게 마음을 모아 주시는 게 훨씬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 시간 함께 해주시고 좋은 마음 나눠 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식구들 덕분에 행복합니다.' 이렇게 칠순 잔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