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8. 17:34ㆍ따뜻한 토론교육 가을호(제1호)/사는 이야기
군포토론모임 초록샘 김정순
“자기야? 샬롯 죽은 거 아냐? 어쩌지? 어제 아침에 보니까 움직이지도 않고 거미줄에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았는데…….”
우리 집은 15층 아파트입니다. 꼭대기 층에서 한 층 아래 14층에 살고 있어요. 한여름 햇빛을 피하려고 거실 블라인드를 내려놓고 살다가 가을 햇살이 좋아 블라인드를 걷어 올렸습니다. 가까이는 대야미역과 마을 모습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멀리는 아파트 가득한 모습들 사이로 겹겹이 보이는 산들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베란다 창을 열어 놓으면 저 멀리 공기들이 우리 집 거실 창을 거쳐 부엌 베란다 창으로 달아납니다. 날짜도 정확히 생각납니다. 2021년 9월 5일 ‘샬롯’이 제 눈과 마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늘 아래 살고 싶었냐? 사람 따라 살고 싶었냐? 이 높은 시멘트 칸막이에 왜 왔느냐? 어떠냐? 14층 아파트 꼭대기 네 집을 지으니 뭐 별게 보이냐? 너도 부려부려 이곳까지 올라왔겠지만 결국 너 혼자로구나! 어찌하냐? 이 높은 곳엔 그 흔한 먹을 것도 없으니 도망가도 숨을 곳이 없으니 난간에 매달리는 수밖에 (2021.09.05.) |
“거미야! 이제 우리 같이 살 거야. 책상 옆에 영근 샘이 책도 보고 컴퓨터도 할 거야. 한 번씩 인사해줘요.”
“너, 이름은 뭐로 할까?”
“거미 너 옷 벗은 것 좀 봐! 이뿌게도 벗어놨네.”
“근데 어쩌지? 이 높은 곳에서 먹고 살 수 있을라나?”
이렇게 우리 집 베란다에 온 거미와 함께 살게 되었고 이름도 지어주었습니다. 돼지 윌버에게 기적을 준 샬롯이 우리 집에 온 것으로 생각하고 샬롯이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잘 잤는지 물어봅니다. 창문을 똑똑 두드리며 인사도 나눕니다. 학교에 가기 전에 인사하고 다녀와서 인사하고 아무도 없는 우리 집을 지켜주고 우리 집에 들어오는 햇살과 바람은 샬롯이 늘 한 번 매만져 주었습니다.
살아있는 것은 참 대단한 일입니다. 이 높은 곳에서 샬롯은 살 집을 튼튼하게 만듭니다. 베란다 그 넓은 곳을 다닐 수 있도록 거미줄을 만들어 집을 야무지게 손봅니다. 혼자서 자기 할 일을 잘도 합니다. 작디작은 하루살이는 샬롯에게 자기 생명을 내어 줍니다. 저 멀리 1억 5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태양 빛을 마주하며 샬롯은 하루를 살아갑니다. 날마다 학교 가는 아이들 재잘거림으로 심심함을 달래고 밤마다 지하철 역사에서 들려오는 기차 소리와 새벽어둠을 거두어가는 달님과 별님과 밤새 수다를 떱니다.
“베란다 창문 한 번 열어볼까? 샬롯 자세히 보고 싶은데…….”
베란다 창에 가서 샬롯에게 묻습니다.
“샬롯! 오늘은 어때?”
“단풍이 예쁘지? 저기 밑에 물든 단풍 색깔 마음에 드니? ”
“난 지금 이때가 젤로 예쁜데…….”
2021년 10월 가을 단풍이 한창입니다. 샬롯도 이젠 살이 많이 올랐답니다.
욕심을 부렸습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을 드러냈습니다. 샬롯 몸에 생긴 무늬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내 욕심으로 베란다 문을 열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해! 샬롯!”
베란다 창문을 열자마자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은 샬롯이 감당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습니다.
“어떻게 해! 샬롯이 죽었다. 어째. 괜히 보고 싶어서…….”
샬롯이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답니다. 순간 불어닥친 바람으로 밑으로 떨어져 버린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거든요. 한참 상심하고 자책하고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베란다 블라인드도 내렸습니다. 하루가 지났습니다. 다시 베란다로 가서 블라인드를 올렸습니다.
눈이 부시도록 태양 빛은 눈을 찌릅니다. 그 사이로 기나긴 다리 두 개가 움직입니다. 샬롯은 다시 살아 돌아왔습니다. 밤새 힘들었던 내게 다시 나타난 샬롯! 이런 걸 기적이라고 말하면 좀 거창한 건가요? 이렇게 샬롯과 함께하는 삶은 이어져 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샬롯에게 무덤덤해지기 시작했어요. 학교 일도 바쁘고 해야 할 일도 많고 몸도 피곤했어요. 블라인드도 내려버리고 한 달 정도 샬롯에게 말도 걸지 못했어요. 내 사는 일에 빠져서 처음 만났을 때 그 맘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간간이 퇴근할 때면 지는 해 사이로 편안하게 거미줄에 걸쳐 있는 샬롯이 부럽기도 했어요.
“샬롯, 넌 무슨 생각 하니? 난 요즘 내가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많아? 넌 혼자 그렇게 높은 곳에서 살면 심심하겠다.”
“조금 있으면 추워질 텐데…….”
샬롯은 암컷 무당거미입니다. 암컷 무당거미는 수컷 무당거미와 짝짓기를 하고 흰색 알집을 만들고 나면 죽습니다. 그런데 샬롯은 14층 아파트 꼭대기층에서 자기 짝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혼자서 외롭게 아침 서리가 내리고 찬 바람이 부는 11월을 보냈습니다.
12월 2일 아침입니다. 거실 베란다 창은 뿌옇게 물방울이 맺혔습니다. 날마다 샬롯 걱정입니다. 죽을 날을 정해놓고 기다리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요? 뿌연 창을 만지니 물방울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립니다. 바람은 샬롯이 살아온 흔적을 산산이 부십니다. 떠오르는 햇살은 그동안 행복했던 샬롯을 기리는 그림자를 창문에 남깁니다.
2021년 9월 5일 갑자기 내 삶에 들어온 샬롯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준 소중한 벗입니다. 2021년 12월 3일 무당거미 샬롯은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90일 샬롯과 함께 한 삶도 마무리합니다.
한 참 창문을 두드려도 넌 모른 척한다. 소리쳐 외쳐도 끄덕도 않는다. 어젯밤 우리는 거룩한 너의 외침을 듣지도 못하고 내 삶이 잘났다고 떠들어댔다. 햇살이 슬프다. 죽음의 날을 정해놓고 너와 나의 삶을 나누었는데 나의 이승 눈물은 너의 저승에 이어질라나. (2021.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