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8. 17:40ㆍ따뜻한 토론교육 가을호(제1호)/사는 이야기
고양토론모임 곽노근
무한경쟁의 시대다. 이 무한경쟁 시대의 비인간성을 지적하는 것은 이제 식상하며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무한경쟁의 표본으로 보일 법도 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10년째 건재하다 못해 이슈의 중심에 서 있다. 이제 사람들의 문제의식은 ‘경쟁’ 자체가 아니라 그 경쟁이 ‘공정’한지에 관심이 있다.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경쟁 요소는 이제 아무 문제도 되지 않으며 다만 그것이 ‘공정’한지가 문제인데, 사람들은 그 경쟁이 비교적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 과정이 투명하게 카메라에 담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만약 조금이라도 문제의 소지가 발견된다면 2019년 프로듀서 101 투표조작 사건에서 보듯이 관련 프로는 매장당한다.
‘경쟁’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잠시 묻어두겠다. 시대의 흐름에 합류하여 지금의 경쟁 시스템은 과연 ‘공정’한지, 그리고 문제는 없는지를 얼마 전 성황리에 종료된 <쇼미더머니 10>을 대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일단 이런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긍정적인 부분이 있음을 인정한다. 상대적으로 마이너일 수 있는 힙합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전의 관문을 누구에게나 열어놨다는 점 또한 긍정적이다. 이러한 오디션 프로가 ‘기회의 평등’ 그 이상을 꿈꾸지 못하게 하고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는) 개인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성공 신화’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한계도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긍정성을 폄훼할 일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쇼미더머니 10>도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게 봤고, 참가자들의 열정과 노력은 언제나 감동이다.
이 글에서 비판하고 싶은 지점은 다시 말하지만, 이 프로에서 누구를 어떻게 탈락시킬지에 대한 경쟁 시스템이 과연 공정한가, 하는 부분이다. 일단 ‘경쟁’ 자체는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를 떨어뜨려야 하는 룰(rule)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심사위원의 자격도 문제 삼을 생각이 없다. 예컨대 자이언티나 그레이가 래퍼 출신이 아닌 것을 굳이 꼬투리 삼으려면 삼을 수도 있겠지만 그 부분이 이 글의 관심 사항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심사위원들이 통과, 탈락 여부를 결정하는 1차 ‘무반주 랩’ 심사와 2차 ‘60초 비트랩’ 심사에는 특별히 딴지를 걸 생각이 없다. 1차 ‘무반주 랩’에서는 심사위원 한 명당 참가자 한 명씩을, 그 무반주 랩을 듣고 빠르게 통과시키거나 탈락시킨다. 2차 ‘60초 비트랩’에서는 네 팀의 심사위원(한 팀당 두 명)이 1차에서 통과한 참가자 랩을 동시에 듣고 탈락 여부를 결정하는데 한 팀의 심사위원이라도 통과 결정을 내리면 통과를 하게 된다. 적어도 참가자들은 심사위원 나름의 기준에 맞춰 ‘실력’을 평가받는다.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3차 ‘1:1 배틀’에서 나는 멈칫했다. 1:1 배틀에 대해 사회자는 “<쇼미더머니>의 오리지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전통적인 미션”이라고 했다. 이런 규칙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지금까지 해왔다는 것에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사실 이런 식의 규칙으로 진행되는 오디션 프로를 심심찮게 봤다. 쇼미더머니만의 문제는 아니다.) 규칙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참가자 두 명이 한 팀을 이뤄 대결을 하고 두 명 중 한 명은 반드시 탈락한다. 이렇게 글로 된 설명만 듣고는 그리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한 팀을 이룬다’는 것이다.
영상을 보니 진짜 한 팀을 이뤄 옆에 딱 붙어서 어떤 비트를 할지 고르고 무대를 어떻게 꾸밀지 서로 의논한다. 힘을 합쳐 좋은 무대를 만드는 게 목적인 것도 같다. 실제로 좋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그런데 3차의 명칭은 ‘1:1 배틀’이다.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같은 팀이지만 내가 상대방보다 더 돋보이고 잘해야 뽑힌다. 둘은 머리를 맞대면서 무대를 꾸미는 와중에 어떤 생각을 할까. ‘나한테 유리한 비트를 골라야지’, ‘내가 더 돋보이게 파트를 짜야지’, ‘내가 더 잘 보이게 동선을 짜야지’, 그런 생각을 대놓고는 아니어도 은연중에 하게 되지 않을까.
실제로 ‘조광일’과 한 팀을 이룬 ‘에이체스’는 보기에 따라 다소 이기적일 수 있는 태도로 본인이 선호하는 비트를 조광일로 하여금 양보하게 했고, 그 비트에 익숙해하지 않았던 조광일에 대해 “표현을 했어야 했죠? 불편했다면”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게다가 공연 시작 전에 에이체스가 조광일을 도발하는 랩을 했는데 그 또한 부적절한 ‘배틀’ 시스템에 자극받은 덕분이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여담이지만 에이체스는 쇼미더머니 10수생이라고 한다. 에이체스만큼 고생한 사람이 이 프로그램에 한가득한데, 이 시스템은 이런 이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가장 부적절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이런 것이다. 한 팀을 이뤄 협력해서 좋은 무대를 만들도록 해 놓고서는, 대결을 시켜 한 사람은 떨어지게 하는, 그야말로 내가 살기 위해 상대방을 짓밟아야 하는, 이 위선적 시스템 때문에 그렇다. 이건 마치 <오징어 게임>에서 둘씩 짝을 지어 20개의 구슬을 먼저 따내는 자가 승리하는 것과 같다. 어릴 때 같으면 즐겁게 했을 이 게임을 생존 게임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여태껏 친하게 지냈던 동료더라도 내가 살아야 하므로 죽여야 하는 것이다. 쇼미더머니 3차 미션은 여기에 한 발 더 나가 협력을 해야 하는 분위기까지 넣음으로써 사람을 이중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차라리 함께 의논하는 시간을 빼버리는 게 낫겠다. 1:1로 실력을 겨루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 같은 비트를 주고 각자의 음악을 따로 만들게 해서 더 나은 사람을 뽑으면 될 일이다. 그러면 최소한 지금처럼 함께 음악을 만들면서(즉, 협력을 하면서) 상대방을 짓밟아야 한다는 이 모순된 정신 착란의 상태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이마저도 본래의 취지, 목표를 살리는 길인지는 모르겠다. 본래의 취지와 목표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비록 이름이 알려지진 않았어도 실력이 있는 자를 발굴해내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1:1 배틀에서는, 예컨대 이 대회 통틀어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갖춘 두 사람이 우연찮게 맞붙었다면, 전체 실력 2위인 사람은 고작 3차 미션에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본 취지를 살리려면 1:1 배틀에 집착할 게 아니라, 참가한 두 사람 모두 뛰어나다면 둘 다 통과시키는 게 맞고, 둘 다 별 볼 일 없다면 둘 다 탈락시키는 게 맞다. 1:1 배틀이라는 룰(rule)에 집착해 실력 있는 자를 떨어뜨릴 여지가 충분한 이 시스템을 굳이 유지해야 하는가? 랩은, 음악은, 축구 경기가 아니다. 반드시 둘이 맞붙어 승패를 겨뤄야 하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는 구기 종목의 스포츠가 아니란 말이다.
사실 <쇼미더머니 10>에 대해 다소 과하게 비판한 측면이 있다. 이번에 새로 생긴 규칙, ‘프로듀서 패스’로 인해 내가 걱정한 것 상당 부분이 해소됐기 때문이다. 1:1 배틀로 한 명이 탈락하더라도 ‘프로듀서’(심사위원)가 보기에 아까운 참가자라면 이 ‘프로듀서 패스’를 써서 살릴 수 있다. 제작진의 고민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그러나 기본 뼈대는 달라지지 않았다. <쇼미더머니>가 더 많은 고민을 하길 바란다.
경쟁을 없애자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생명이 ‘경쟁’인데, 굳이 뜬구름 잡는 얘기 하며 ‘경쟁’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경쟁을 시키더라도 어떤 경쟁을 시키는 게 좋은지, 그리고 ‘옳은’ 지, 따져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경쟁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라도,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정도는 구별했으면 좋겠다.
문득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학교, 우리의 교육은 경쟁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우리의 경쟁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