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기술 가르쳐보기

2022. 5. 14. 21:46따뜻한 토론교육 봄호(제2호)/토론 이야기

토론 기술 가르쳐보기

 

군포토론모임 유준희

 

1. 초등토론에서 토론 기술을 가르쳐봤더니

 

초등토론교육연구회는 초등 교실에서 토론 수업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모임이다. 우리 모임은 상대를 꺾는 토론 기술이 아닌, 경청과 배려가 있는 성숙한 토론 태도와 문화를 기르는데 가치를 두고 있다. 그래서 우리 연구회는 토론 형식(짝토론, 전체토론 등), 입안문 쓰기, 교차조사-질의와 같은 기초를 익히면 바로 토론에 돌입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투박하지만 자유롭게 말하고 들으며 저마다 방법으로 토론 실력을 기른다.

 

나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여러 해 동안 아이들을 만나왔지만 최근들어 가르치는 방법을 조금 틀어보았다. 보통 1학기엔 토론 규칙과 태도에 집중하고, 2학기부턴 토론 기술과 자료조사 방법을 일러주는 방법이다. 이런 흐름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교사 처지에서 느낀 점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았다.

 

먼저 자료조사 방법, 토론 기술을 알지 못한 채 벌인 1학기 토론들은 결국 주관적인 경험이 바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기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한 객관적 자료도 없고, 화법도 없다. 어른이 보기에 객관성이 결여된 수준 낮은 토론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토론의 중심에 개인마다의 삶, 이야기가 있었고, 그 경험을 서로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하며 재미있고 따뜻한 토론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2학기에 정작 자료조사나 토론 기술을 배우고 나면 공감을 얻었던 개인적인 경험들은 보편적이지 않은 개인의 문제라며 폄하되어 버렸다. 삶과 공감이 사라지고, 딱딱한 자료조사가 남은 느낌이다. 물론 2학기 토론이 안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겠지만 더욱 수준 높은 토론을 할 수 있었다.

 

토론 기술을 처음부터 알려주지 않으면 그만큼 저마다의 빛깔로 자유롭게 생각이 뻗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방울토마토 모종이 지주대 없인 제대로 크지 못하는 것처럼, 토론 기술과 자료조사 방법을 모르면 토론 실력이 어느 수준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토론을 계속 접하면서도 스스로 성장함을 느끼지 못해서인지 나중엔 지루해했다. 그 후 토론 기술을 아이들이 접하고 나면 아주 요긴한 도구를 발견한 듯이 흥미롭게 습득했다. 그리고 그만큼 토론의 수준은 높아졌다. 1학기 토론에서 종종 발견되던 토론 상의 문제들이 많이 개선되었다. 예를 들어 쟁점 논의가 출구를 찾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 소수일 뿐인 사례가 토론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일 등이 점차 사라져갔다.

 

물론 토론 기술은 초등학생에게 아직 어려웠기에 모두가 빠르게 습득하진 못했지만, 먼저 터득한 아이들이 먼저 활용하는 걸 보면서 다른 아이들도 함께 성장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정작 토론 기술을 익히고 나니 그 기술에만 매몰되어 토론이 파행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 파행의 일등 공신은 두 가지였다. 개인적인 경험을 모두 무력화시키는 일반화의 오류’, 반대 측의 예상과 우려 모두를 무조건 폄하해버리는 가정의 오류가 그랬다. “그건 개인적일 뿐입니다.”, “그건 만약에 잖아요.”라는 말들. 이렇게 어설프게 배운 토론의 기술들은 기껏 쌓아온 따뜻한 토론 분위기를 허물기 일쑤였다.

 

2. 초등학생에게 토론 기술을 가르쳐도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고 생각한다. , 아이들이 토론을 충분히 경험해보고, 배려하며 즐겁게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전제된다면 말이다. 물론 토론 기술을 처음 배울 때 여러 문제를 당연히 겪을 것이다. 어려운 것은 둘째 치고, 토론 장면에서 무수히 오남용될 것이다. 하지만,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디딤돌로 토론 기술은 아주 요긴하리라 본다.

 

비경쟁 토론이란 말이 있다. 토론은 날카롭게 상대를 상처줄 수 있는 문제가 있기에 날카로움을 제거한 토론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토론이 아닌 토의가 되어버린다. 그것의 문제점이 있다고 해서 그 핵심을 제거하면 오히려 본질이 왜곡되어 버린다. 토론 기술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토론은 말로 다투는 일이다. 다투는 일에는 필요한 기술과 무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토론 기술이란 무기가 너무 날카롭다고 아예 쥐여주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큰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날카로운 무기는 아이들 수준에 맞는 장난감으로 만들면 된다. 이렇게 토론 기술을 초등에서 아예 외면하기보다 초등에 맞게 재가공, 재구성하면 어떨지 함께 논의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