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14. 22:06ㆍ따뜻한 토론교육 봄호(제2호)/토론 이야기
선생님, 학교 숙제 좀 줄여주세요
군포토론모임 이정원
-우리 반 소개
5학년 학생들과 담임으로는 처음 만났어요. 벌써 10번째 제자예요. 우리 반은 매일 일기와 독서록을 써와요. 영근샘 영향이 커요. 독서록은 분량이 자유예요. 한 줄만 적어도 괜찮아요. 그밖에 공부 관련된 숙제는 많지 않고 대부분 수업 시간 내에 마쳐요. 그리고 매주 금요일 마지막 시간에는 좋아바 학급 회의를 해요. 학교 숙제를 줄여달라는 이야기는 3월 25일 회의 시간에 나왔어요.
3월 25일 학급회의 논제: 학교 숙제를 줄여야 한다.
<토론 전> 가치 수직선(찬성 16 / 반대 7)
다 같이 의견도 나눠보고 입안문도 적고 1:1 토론도 해보았어요. 그때 나왔던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논제 분석+반대 측>
<논제 분석+찬성 측>
<전체 토론에서 나온 난상토론>
찬성: 학교 숙제를 줄여야 한다.
반대: 학교 숙제를 줄이면 안 된다.
-경험: 학원 숙제하고 나면 늦어져서 학교 숙제하기 힘들다. 학원 다녀오면 8시, 학원 숙제하면 11시다.
-질문: 학교 숙제 줄이면 더 좋지 않을까? (잠도 더 자고, 건강)
-반박: 학교 끝나고 학원 가기 전에 학교 숙제하면 되고, 학교 숙제(일기, 독서록) 다 해도 30분밖에 안 걸리니까 학교 숙제할 시간이 충분하니 그대로 하자. 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학교 숙제를 해도 된다.
-일찍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다. 학원 다녀와서 쉴 시간이 필요하고 저녁도 먹어야 하고, 학원 숙제도 하고, 집에서 공부할 것도 하고 나면 시간이 너무 늦다.
-학교 숙제 하루 1편이니, 학원 숙제 있더라도 할 수 있다. 학원보다 학교가 우선이다. 줄이는 것에 반대.
-학교가 우선인가, 건강이 우선인가?
-학교가 우선입니다. 공부한다고 건강이 나빠지지 않습니다. 학교 숙제 일기 1편 쓴다고 건강이 나빠질 정도는 아니다. 학원 숙제가 오히려 건강이 나빠질 수 있고 오히려 학교 숙제는 건강에 좋다.
-매일 숙제가 쌓이다 보면 심한 경우엔 병에 걸릴 수 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여러 가지 병에 노출될 수 있다. 동물까지도 스트레스로 인해 병에 걸릴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고등학생, 대학생들은 스트레스가 많은데 다 병에 걸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박카스를 마셔서 그렇다.
-모두가 박카스를 마시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 대학생은 이미 다 커서 면역력이 향상해 있기 때문에. 우린 아직 초등학생이니 고등학생 대학생과 비교하면 안 된다. 우리는 수면시간이 부족하다.
-병에 걸릴 정도는 아니다. 주말에 잘 쉬면 된다.
-주말에도 바쁘다.
-주말에 학교도 안 가고 학원도 쉬니 시간이 많다. 그렇게 바쁘면 학원을 끊어야 한다. 학교 숙제하고 조금 쉬고 학원 숙제하면 된다. 학교 숙제는 의무고, 학원 숙제는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 학교 숙제까지 줄일 것은 아니다.
-본인이 학원에 다니고 싶어서 하기도 하지만 부모님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기도 한다.
-숙제는 숙제다. 학원 숙제도 중요하다.
-지금 발언자(반대)가 우리 학원 선생님에게 숙제 줄여달라고 말해서 줄여주면 인정한다. 반대 측 의견처럼 마음대로 학원을 그만두거나 학원 숙제를 줄이는 것이 쉬운 게 아니다. 학교 공부를 위해 학원에 다니는 것이기 때문. 학원 끊으면 학교 공부가 어려워진다.
-늦게까지 공부하면 잠을 못 자서 건강이 나빠진다. 스트레스받으면 건강이 나빠진다.
-숙제를 줄이자고 하는 친구들이 건강을 이야기하면서 잠잘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오히려 보통 11시 12시 늦게 자는 편인 것이 이상하다. 건강과 학교 숙제는 무슨 관계인가? 공부하면 훨씬 건강이 좋아진다.
-찬성: 일이 있어 (여행 등) 집에 늦게 오거나 한 경우 다음 날도 늦게 일어나면 숙제를 못 할 수 있다. 가져가서 써도 되지만 놓고 간 경우는 못 한다.
-반박: 아침에 못 하면 학교 와서 점심시간 쉬는 시간에 하면 된다. 공책 두고 오면 다른 공책에 쓰고 붙이기. 지금 숙제로는 일기 독서록, 미덕 통장밖에 없다.
-일기 독서록은 당연히 써야 하는 것, 미덕 통장은 학교에서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일기도 주말에는 안 썼으면
-주말에 쓸 것이 더 많다. 그러니 써야 한다.
-학교 숙제 그렇게 많진 않다. 일기는 매일 쓰면 나중에 추억.
<토론 전> 가치 수직선 (찬성 16 / 반대 7)
<토론 후> 가치 수직선 (찬성 15 / 반대 8)
-토론을 마치며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빠질 수 없는 부분이 공부고 숙제이지요. 어떤 부모님은 “우리 아이 스트레스 주지 않으려고 교과 학원은 최소로 보내요. 예체능 원하는 것 시키고 있어요. 저는 공부보다 아이가 친구들과 잘 지내고 학교생활 잘하는 게 더 중요해요.”라고 말씀하세요. 또 어떤 부모님은 “우리 아이가 책을 너무 안 읽어서 걱정이에요. 맨날 숙제를 억지로 억지로 하니까, 집중하면 금방 하는데 정말 속이 터져요. 잔소리하기도 힘들고요. 우리 아이 학교에서도 집중 못 하나요?” “선생님, 매일 일기 숙제 내주셔서 정말 좋아요. 아이가 내 말은 안 들어도, 선생님 말씀은 들으니까요.”
맞아요. 우리 반 스물아홉 명 아이들 수만큼의 양육 철학이 있어요. 과연 하나의 정답이 있을까 모르겠어요. 다만, 아이와 부모가 서로의 입장을 전하고 맞춰나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의 열띤 토론 모습을 보며 정말 흐뭇했어요. “토론을 한다고 해서 숙제를 줄이진 않을 거야. 선생님이 생각해서 필요하면 계속할 겁니다.”라고 미리 이야기해두었어요. 놀라웠던 것은 모두가 숙제를 줄여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거예요. 제가 입장을 정해주지 않았는데 가치 분석하며 난상토론 할 때 늘 숙제를 꾸준히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숙제를 줄여달라고 말하고 있고 숙제를 잘 안 해오던 아이가 오히려 숙제가 필요하다고 열변하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아, 우리 반 아이들은 참 솔직하구나... 이렇게 솔직하게 의견을 내주니 참 고맙다.' 저를 믿어주고 우리 교실을 안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이렇게, 우리 아이들 삶의 주제로 나누는 토론 안에는 어린이의 삶이 담겨있어요. 아이들의 삶을 엿보는 순간들은 참 소중해요. 하지만 학교는 하고 싶은 것만 할 순 없잖아요. 다만 아이들의 힘든 삶을 나누며 서로 위로하고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라요. 저도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2022년 5월 5일 어린이날 100주년에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유튜브에 '[유엔아동권리협약] 대한민국에서 아동으로 산다는 것'을 제목으로 한 영상을 5월 4일에 함께 보며 아이들과 이야기 나눴어요.
[유엔아동권리협약] 대한민국에서 아동으로 산다는 것
https://www.youtube.com/watch?v=CWm_fjMff3o
아이들도 저도 보면서 눈물이 자꾸 났어요. 왜 그럴까요. 아, 어른들도 아이들도 산다는 것은 참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거예요.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도 잊고 있던 어린이의 삶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해준 고마운 영상이었어요. 우리 사회가 아직도 어린이를 혐오하고 함부로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많이 반성하게 되었어요. 아동 인권의 변모 역사를 보면 정말 가슴이 아파요. 아직도 전쟁과 기아 속에 고통받는 어린이가 참 많아요. 또한 내가 어린이인 시절 겪었던 어려움도 선명하게 떠올라요. 힘이 없고 어리고 배운 것이 없어서 무시당하고 강요받던 일들이 많았어요. 우리 사회에 약자들이 받아온 차별을 함께 생각해 보았어요. 아이들이 말해요. "선생님, 이 영상 우리 부모님께도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하이클래스에 올려주시면 안 돼요?" 아마, 그 말속엔 '엄마 아빠, 제 마음 좀 봐주세요. 알아주세요'라는 속마음이 들어있지 않았을까요? 5월, 아이들도 학부모님도 그리고 선생님들도 모두 함께 행복한 5월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