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오’ 흘려보내지 않기

2024. 6. 10. 13:24따뜻한 토론교육 여름호(제6호)/교실 이야기

‘아니오’ 흘려보내지 않기

고양토론모임 곽노근

 

한두 주에 한 번씩 부모님들께 편지가 나간다. 올해 510일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학부모님께

안녕하세요, 2학년 3반 담임 곽노근입니다^^ 이번에는 아이들과 간단히 토론을 하고 아이들의 의견대로 어떤 것 하나를 바꾼 모습을 소개하려 합니다.

지금 한창 배우고 있는 자연교과서에는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우리가 지구에게 주는 해로움을 얘기했지요. 전기를 많이 쓰는 것도 결국 환경에 많은 피해를 준다는 말을 하자 아이들이 그럼 전기를 끄자 합니다. 그중 하나가 티비였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제가 티비 화면에 알림장을 띄워 놓으면 밥 먹고 와서 점심시간 중에 아무 때나 알림장을 씁니다. 그러니깐 달리 말하면 점심시간 내내 티비 화면이 켜져 있는 것이지요. 티비 화면을 점심시간 내내 켜 놓지 말고 끄는 대신, 알림장을 칠판에 적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조금 번거로움이 있지만 괜찮은 의견이라 생각해 그럼 그렇게 할까요?”라고 물어본 순간, 몇 아이들은 작게 ‘아니오’라는 말을 한 걸 들었습니다. 어떤 의견이든 소중합니다. 이때부터 간단한 토론이 시작되었지요. 최대한 제가 개입하지 않고 아이들 양쪽의 생각을 들었습니다.

티비화면에 알림장을 쓰자는 측은 1. 선생님이 힘들게 칠판에 적어야 하고, 다시 컴퓨터로 적고 하이클래스로 보내야 해서 힘드시다. (제가 이 과정을 말해줬습니다.) 2. 부모님이 보시는 하이클래스에 알림장이 늦게 올라올 수 있다. 3. 이미 컴퓨터 보는 화면이 익숙해졌다. 칠판에 알림장을 쓰자는 측은 1. 환경에 도움이 된다. 2. 칠판이 가운데에 있어 보기가 편하다, 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의견을 들어본 후 다수결로 정했습니다. 눈감고 손을 들었습니다. 결과는? 티비화면 9, 칠판 11. 그렇게 알림장은 이제부터 칠판에 쓰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티비에 쓰는 게 더 편합니다. 그러나 소중한 아이들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어제 처음으로 알림장을 칠판에 꾹꾹 눌러 직접 칠판에 썼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2024510일 부모님들께 드리는 편지 중 -

 

어떤 주제에 의견이 갈릴 때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류 중 하나가, 다수결로 바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걸 교실 상황에 적용해 보면, 아이들의 의견이 갈리는 어떤 일이 있을 때, 교사가 섣불리 바로 다수결 상황으로 넘어가 버리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은 것, 서로의 의견을 들어보며 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지 않은 것.

 

나는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꼭 의견을 나누게 한다. 물론 제일 좋은 건 논제 분석을 하고 입론을 쓴 후, 짝 토론으로 찬성 반대를 모두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매번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 시간 제약이 있을 때는 형식 없이 찬성하는 아이들 의견과 반대하는 아이들 의견을 고루 듣고, 때로 난상 토론이 되게끔 놔두기도 한다. 그러다가 때로 한쪽 의견의 균형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개입하여 인위적으로 균형을 맞추기도 한다.

 

아이들끼리의 토론이니 교사가 개입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교사는 사회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교육자이기에 교육상 필요할 때는 개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이지 어느 한쪽으로 의견을 몰아가기 위함은 아니다. 아이들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필요할 뿐, 교사의 생각을 강요하기 위함이 아니다.

 

사실 나는 칠판에 알림장을 쓰자는 의견이 나온 게 너무 좋아, 조그맣게 들려온 아니오소리를 무시하고픈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뭐가 교육적으로 더 바람직한 건지, ‘존중이란 건 무엇인지 짧은 시간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니오’를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아, 2학년 수준에서 같이 이야기 나누고 토론을 한 건 참 잘한 것 같다. 비록 ‘아니오’ 의견대로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말이다.